예종은 세조에 대한 비판을 무디게 하려고 사초 실명제를 도입하였다
조선 최대의 사초 조작 사건의 발단은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즉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조가 승하하자 실록 편찬 작업을 위해 실록청이 만들어졌다. 신숙주, 한명회, 양성지 등 세조 때의 훈구대신들은 대거 실록 편찬의 고위 책임자인 실록청 당상으로 임명되었다.
실록청의 당상은 대체로 영의정이 겸임하는 영사, 좌의정과 우의정이 겸하는 감사, 판서 급이 겸하는 지사, 참판 급이 겸하는 동지사, 여섯 승지와 홍문관 부제학 및 대사간이 겸하는 수찬관으로 구성되었다. 실록청의 당하관은 실무 작업을 하며 실록청 당상을 보좌했다.
예종은 돌아가신 부왕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실록 편찬을 앞두고, 선왕의 일을 사관들이 어떻게 기록했는지가 마음이 걸렸다.
실록에 의하면, 예종은 춘추관(春秋館)에 보관하고 있는 사초를 내전으로 들여오게 명을 내렸다.
"노산(魯山) 때의 승정원일기 및 계유년 정란(靖亂)) 때의 사초(史草)를 내전(內殿)으로 들여오라. 과인이 한 번 살펴보려 한다.” (예종실록, 예종 1년 4월)
노산은 단종을 말하며, 계유년 정난은 단종 1년에 수양대군이 원로대신인 황보 인과 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하여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이다.
예종은 세조의 즉위 과정 등 여러 가지 사건을 사관들이 엄정하고 비판적으로 쓸까 염려하여 사초 실명제를 명했다.
"실록청은 선왕 시절에 사관을 역임한 모든 이들이 기록한 사초(史草)를 거두어들이고, 반드시 사관의 이름을 써서 제출하게 하시오.”
세조와 운명공동체인 훈구대신들도 사관들의 붓끝을 둔하게 하여 신랄한 비판을 억제하려고 예종의 명에 적극 동조하였다.
세조 때 사관이었던 원숙강(元叔康)은 사간원의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실록청이 만들어지자 기사관으로 실록 편찬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다. 원숙강은 선왕 때의 사관들이 이름을 써서 실록청에 사초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원숙강은 ‘사초에 이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사간원의 동료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임금에게 간하기로 했다.
예종 1년 4월.
헌납 장계이가 사초 실명제에 대한 사간원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었다.
사간원은 정 3품 대사간을 수장으로, 종 3품 사간(司諫), 정 5품 헌납(獻納),
정 6품 정언(正言)으로 구성된다.
"사(史)는 직필(直筆)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춘추관에서 사초를 거두면서 사관의 성명을 책에다 쓰도록 하였는데, 사초는 단지 국가의 일만 기록한 뿐만 아니라 사대부(士大夫)의 선악과 득실도 모두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 이와 같이 한다면 신(臣) 등은 사관들이 원망을 얻을까 염려해서 직필(直筆)을 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사초로 실록을 만드는 것은 지금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며 옛사람도 또한 성명을 썼는데, 무슨 말이냐? 누가 먼저 이 말을 냈느냐?”
장계이가 아뢰었다.
"정언(正言) 원숙강이 지금 춘추관에 파견되어 있기 때문에, 사간(司諫) 조간과 더불어 말했습니다. 옛사람이 성명을 썼다는 것은 신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임금이 원숙강을 불러 물어보니, 원숙강이 아뢰었다.
"신(臣)이 춘추관에 출사(出仕)하면서 사초를 보니 모두 사관의 성명을 써놓았는데, 신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이 하면 대신들의 원망을 얻을까 염려해서 역사를 바른대로 쓰는 사람이 없을까 두려워하여 여러 동료와 의논하여 아뢴 것입니다.”
예종은 원숙강을 나무랐다.
"너는 어찌 견문이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원숙강이 거듭 사초 실명제는 불가하다고 아뢰자 임금이 말했다.
"실록을 편찬함은 선왕의 공덕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인데, 너희들은 이러한 사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관이 사대부의 일을 바르게 쓰지 못할까 염려하니 어찌 된 일이냐?”
예종은 원숙강과 사간원의 간원들을 의금부에 가두게 하였다가 곧 방면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언로(言路)가 막힐까 두려워서 용서하여 준다.”
원숙강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초에 이름을 쓰게 하면 장차 사관이 기록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는 무시되었다.
하루아침에 누가 사초를 쓴 것인지 밝히는 사초 실명제로 바뀐 것이었다.
실록청의 고위직을 차지한 대신들은 혹 자신을 비난하는 사초를 읽으면, 누가 그 사초를 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작성한 사관들에게 사초 실명제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불을 보듯 환했다.
갑자기 바뀐 사초실명제에 동요하여, 조선 최대의 사초 조작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민수(閔粹)였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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