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가 수레에 도전하다 (7)

지금 한명회를 처단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실 것입니다

by 두류산

7장


한명회는 유자광이 올린 상소의 필사본을 구해 읽으며 몸을 떨었다.

“미천한 자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감히!”

한명회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어디 주제넘게 상소하여 죄를 엮어서 만들려고 하는가?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자이다!’

한명회는 유자광의 상소를 읽다가, 노산군을 언급하는 대목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노산군을 말한 일을 유자광이 어떻게 알고 고하는 것인가?’

한명회는 이조 낭청의 집사 문제로 지록위마라고까지 칭한 유자광의 글을 읽고는 섬뜩함을 느꼈다.

“유자광은 독하고도 무서운 놈이다. 잘못하다간 미친개한테 물리듯 당하고 말겠다.”


한명회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으면 진짜 죽을 죄인이 된다.’

한명회는 유자광의 상소에 대해 임금에게 변명을 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한명회는 천천히 묵향을 음미하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제 곧 중국 사신이 도착을 한다. 나라의 중대한 일이 눈앞에 있으니 대간들도 유자광의 상소로 시끄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다.’

한명회는 붓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저절로 꺼지게 내버려 두자. 불에 기름을 부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유자광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서 상소를 올렸으니, 최소한 대간들이 사실 규명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려서 다시 한명회 탄핵의 불씨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호수에 돌을 하나 던진 듯이 조정은 고요하였다.

유자광은 탄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기로 했다. 대간도 아니면서 정승을 탄핵한 죄를 물어달라고 임금에게 청했다.

임금은 처벌해달라고 청하는 유자광을 궁궐로 불렀다. 성종은 고개 숙여 엎드린 유자광에게 말했다.

“누구든 생각이 있는 것이니, 생각한 바를 과인에게 말했다고 죄를 물을 수는 없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지만 한명회의 죄는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유자광은 한명회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임금에게 여러 번 간곡히 청했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고, 어전에서 물러나왔다. 성종은 상소에서 본 글 솜씨처럼 거침없이 아뢰는 유자광을 좋게 보았다.


유자광이 대죄(待罪, 죄의 처벌을 기다림)를 청하여 임금이 유자광을 불러 용서를 해준 다음 날 명나라 사신들이 한성에 도착하였다.

유자광은 대간들이 한명회의 탄핵을 끝내 더 이상 제기하지 않자 가슴에 불덩이가 치밀어 올랐다.

‘한명회의 잘못을 그대로 둔다면, 왕의 권위를 어디서 구하겠는가?’

유자광은 교활한 한명회의 얼굴을 떠올리며,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명회의 죄는 주상께서 이미 말씀하셨고, 조정에서도 모두 알고 있으며 나라 안의 백성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명회가 비록 억지로 태연자약하지만 마음은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면......?’


유자광은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흠칫 놀랐다.

‘장차 불온한 계획을 가질 수도 있다!’

유자광은 곧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불안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한명회는 큰일을 해본 사람이다. 남이도 한명회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두려워하여 역모를 일으키지 않았는가.’

‘한명회는 두 임금을 사위로 만들어 권력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세자빈에 이어 지금은 공혜왕후도 승하하지 않았는가? 공혜왕후의 죽음으로 날개가 꺾였다는 말을 들으면 그가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는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힘이 있다.’

한명회의 셋째 딸인 세자빈 한씨는 예종의 세자 시절에 왕실의 원손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17세에 요절하였다. 성종의 왕후가 된 한명회의 넷째 딸인 공혜왕후도 19세에 숨을 거두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은 뒤엉켜, 유자광은 방을 서성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한명회가 불온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그의 죄를 국법(國法)으로써 처단하지 못한다면, 어리석고 미혹한 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한명회의 죄가 중(重)하고 큰데, 주상께서 알면서도 죄를 다스리지 않고, 조정에서 알면서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를 따르는 이가 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안 그래도 무소불위의 위세가 점점 더 강해질 것이 아닌가.‘

유자광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공혜왕후가 돌아갔으니 주상과 연결된 끈이 끊어진 셈이다. 그가 마음을 잘못 먹고 역심(逆心)을 품는다면......?


유자광은 이불을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

“주상전하와 사직이 위험하다!”

새벽에 첫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직책이 간관은 아니지만, 국가의 큰일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말해야 한다!”


유자광은 한명회를 탄핵하는 상소를 다시 올리기로 작심하고 지필묵을 찾았다.

“신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서 두 번이나 임금의 총명을 모독하니, 진실로 황공하옵니다. 어리석은 신은 밤새도록 되풀이하여 생각해 보아도, 한명회의 죄는 다스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자광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써 내려갔다.

“전하께서 이미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한명회의 말이 이와 같다.’고 하셨는데도, 법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 한(漢) 나라 효질황제는 양기를 눈여겨보고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발호 장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거하지 못하니, 양기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반역을 도모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신(臣)은 생각하건대, 사람의 죄를 알고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여깁니다.”


‘발호(跋扈)’의 발(跋)은 뛰어넘는다는 뜻이고, 호(扈)는 대나무로 엮은 통발을 말한다. 즉 ‘대나무 통발을 뛰어넘다.’라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권력을 휘둘러 윗사람을 능멸하거나 하극상을 저지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양태후의 오빠인 양기(梁冀)는 군권을 장악하여 후한(後漢)의 충제(沖帝)가 죽자 어린 효질황제를 후사로 세웠다. 효질황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양기가 교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함을 알고서 권세를 함부로 휘둘러 날뛰는 장군이라는 뜻인 발호 장군(跋扈將軍)이라 불렀다. 양기가 이를 듣고 불안해하다가 드디어 독으로 살해하였다.


유자광은 붓을 놓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 최고의 권세가에게 역모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했으니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심정이었다. 유자광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왜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의 집안을 망하게 하였겠는가? 지금 한명회를 처단하지 않으면, 주상은 두고두고 후회하실 것이다.’


유자광은 붓끝을 곧추 세웠다.

“옛날에 곽광이 오랫동안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처리하며 도리에 어긋난 것이 많았으나 요행히 그 자신은 화(禍)를 면했지만 그 자손에 이르러서는 멸문지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사관은 이를 말하기를, 선제가 재앙을 점차로 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곽광(霍光)은 전한(前漢)의 대장군으로서 소제(昭帝)를 도우고 선제(宣帝)를 세워, 20년 동안 나라의 정권을 잡았고, 그의 딸은 선제의 황후가 되어 온 집안이 부귀를 누렸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선제는 곽황후를 폐하고 왕권을 위협한 곽씨 일족을 멸망시켰다.


유자광은 다시 붓을 먹물에 적셨다.

“지금 전하께서는 한명회가 여러 조정에 공로가 있고, 또 왕후의 아버지였다고 하여 차마 법(法)대로 처리하지 않고 계십니다. 하지만, 다시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게 된다면 전하께서는 선제가 곽씨의 화(禍)를 점차로 키운 것과 같게 될 것입니다.”


유자광은 생각만큼 붓이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고 느끼며 상소의 마지막 글을 써내러 갔다. 유자광은 드디어 붓을 놓았다. 그제야 밖에서 봄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러스트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1509020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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