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종훈과 우주가 독서실 옥상에 이야기하는 첫 장면이다. 무더운 한여름 오후였다.
♬ 1995년 무더운 어느 날,
말보로 레드의 키가 빠르게 작아졌다. 피어나는 연기는 공중에서 천천히 흩날리며, 후텁지근한 무더위를 뚫고 당당했다. 우주는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여름의 더위는 가팔랐다. 장마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무더위가 쏟아져 내렸다. 급하게 떨어지는 더위가 주변 경사를 타고 땅으로 돌진하고는, 곧 사방으로 숨 가쁘게 달렸다. 우주의 담배도 숨 가쁘게 달리는 더위와 속도를 맞추듯이 빠르게 연기를 뿜어대며 타올랐다. 그때마다 우주는 하늘을 향해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연기를 힘차게 쏟아냈다.
우주는 목을 꽉 조일 것 같은 개목걸이(나는 그녀의 목걸이를 그렇게 불렀다)를 매고, 메가데스의 일원들이 박힌 반소매 티셔츠에 세미 힙합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차림새는 영락없는 신세대 감각이었다, ‘에이플 독서실’이라고 새겨진 싸구려 슬리퍼를 뺀다면.
그 모습이 멋있거나 예쁘지는 않았다. 그건 누구나 우주의 꼴을 보면 동의할 것이다. 그녀는 아무래도 겨울에 어울리는 체형을 지녔다.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있기에 그녀의 상체는 어째 좀 민망했다. 더위는 가슴과 등 쪽에 마련된 평원을 육중한 기운을 싣고 내달렸다. 물론 나도 그녀와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둘이 서 있으면 꼬챙이 남매라고 놀림 받기도 했으니까. 그녀와 나는 쌍으로 피뢰침 같았다. 꼿꼿한 몸뚱어리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피뢰침이 너무 뾰족하다면 두 개의 전봇대라고 해도 좋다. 전봇대가 너무 크다면 두 개의 장승이라고 해도 좋다.
지하여장군이 담배를 피운다?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기야 우주는 지하여장군처럼 인상이 험악하지는 않았다. 절세미인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얼굴도 아니었다. 문제는 겉멋이었다. 어디서 배워 왔는지 담배를 꼬나문 자세가 가관이었다. 담배를 꼬나문 우주의 모습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지역에서나 전설처럼 존재하는 7공주파 두목이면 어울릴까? 하기야 난 7공주파를 본적도 없으니 그냥 상상일 뿐이지만, 설령 보지 못했더라도 정말이지 우주의 꼬락서니는 공주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나를 한번 훑더니 곧 시선을 거두고 신경을 껐다. 쳇, 그 ‘똥폼’의 신성함이란! 나름대로 그녀에게 그런 자세는 중요했다. 그녀는 담배에 한동안 집중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뻣뻣하게 서서 바라보곤 했다.
독서실 옥상은 열기로 달아올라 얇은 슬리퍼 바닥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독서실 주위를 감싼 고층아파트에서 뿜어내는 위압적인 열기도 육중했다. 정말이지 무더위가 번개처럼 떨어진다면 두 피뢰침은 온전히 그 파괴적인 에너지를 몸으로 받아야 할 판이었다.
나는 답답해서 미리 뽑아온 콜라를 들이켰다. 시원한 탄산이 목 안을 치열하게 쏘아댔다. 내벽을 긁어대는 짜릿함이 잠시나마 무더위라는 강력한 대군을 몸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좀 상쾌해졌다. 우주는 콜라를 홀짝거리는 나를 보고는 한마디 던졌다.
“너, 탄산음료 마시지 마. 뼈 다 삭아.”
잔소리꾼! 왜 별말 안 하나 궁금했다.
“넌 뭐 담배 안 피우냐? 그게 더 나쁘다.”
“너 뼈 다 으스러져 죽는 거랑 폐 하나 아픈 거랑 어느 게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니?”
우주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 볼멘소리에 즉각적으로 반박했는데 ‘너 뼈 다 으스러져 죽는 거랑’이라는 부분을 너무도 위협적인 어조로 표현해서 나는 그만 주눅이 들었다. 마치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난 갑자기 뼈가 으스러지는 게 폐가 뚫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수긍했다.
늘 그랬지만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것도 우주가 말하면 그럴듯해진다. 우주에겐 말로써 상상 속에서나 있는 일을 실제화하는 묘한 능력이 있었다. 사실 뼈가 으스러지나 폐가 곯은 거나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인데, 우주의 입담에 걸리자 생각할 필요도 없이 뼈가 으스러지는 쪽이 모든 고통을 짊어져야만 했다.
‘달변의 황제.’
그런데 상상 속의 고통은 실제로 발바닥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옥상 바닥을 달구던 열기가 자꾸만 몸을 타고 올라와 머리까지 달리려고 했다. 슬리퍼는 이런 열기의 야욕을 막기엔 너무도 무력하게 얇았다. 바람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지상으로부터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노닥거리는 소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우주는 담뱃불똥을 검지로 조준하더니 능숙하게 단발로 때렸다. 불똥은 담배꽁초에서 떨어져 나와 옥상바닥에서 마지막을 격렬하게 태웠다.
“후, 너무 더워. 왜 나오라고 했어? 더워죽겠는데 팥빙수 가게도 아니고 옥상이 뭐야?”
우주는 불평에 답하지 않고 내 손에 든 캔콜라를 뺏다시피 가져가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이 기막힌 무례함이란!’
“영화 보러 갈래? 저녁에 블루 상영해준데, 블루에서.”
우주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