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 거장 AI, 너의 이름은 파이오니아
♬ AI 발달의 다섯 시기와 일곱 단계
♬ 파이오니아의 여명, 티핑포인트 전반기까지
♬ 인간 문명에 AI가 존재감 있게 등장한 순간
♬ 파이오니아의 출현
♬ 파이오니아의 후폭풍, 저작권 저인망
♬ 파이오니아 저작권 저인망 시대는 오발탄일까
♬ 파이오니아와 인간 예술가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생략)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원래 구상하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교양서적인 결을 지닌 채 지식놀이의 성격을 띠며 뻗어나갔습니다. 그래서 그걸 그냥 옮겼습니다. 소설적 색채를 띠면서도 골격은 교양서적 성격을 지니는데, 사실 관념소설 사상소설 등 조금 현학적일 수 있을 모더니즘 소설에서도 이런 게 보이죠.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애매한 그 무엇이죠. 사실 장르와 분과를 나누기 전에 이러한 모호한 성격의 몽상은 있기 마련이고, 어느 한쪽으로 편재되려고 정돈하거나 폐기하기 마련입니다. 에세이에선 경험적이거나 칼럼적인 방식으로 정돈되고요. 그 불균질적인 결 그대로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을 늘 했고, 저는 시민 저술의 유형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지식놀이'라는 영역, 즉 프로페셔널로선 모큐멘터리 영역 정도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은 부분에서 브레인스토밍 하듯 그 형식과 문법에 관심을 지녔습니다. 그게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지금도 여러 각도로, 시민적이라 할 만한 미덕을 반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제 개성과 스타일을 얻으려는 것이 진짜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몽상을 옮겨놓은 이 산문도 그러한 과정의 소산입니다.
- 원래 이 원고는 AI 시대에 예술의 변화를 몽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뜻하지 않게 기존에 제가 붙들던 화두와도 만났습니다. '시민 창작과 참여하는 글쓰기'라 할 수 있을 텐데, 어느 순간, 이것이 스스로도 고급화하기엔 몽상 같다고 여겼죠. 모두가 그렇게 글을 쓸 필요가 있는가 자문하다 보니, 어느 때부턴가 시큰둥해졌는데, 뜻하지 않게 AI 시대에 예술 전문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조금은 다른 형태로든 그런 시절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것을 소설적으로 구상하기보다는 교양서의 흐름으로 몽상을 진행하면서, 다큐의 인터뷰 발화자가 자신의 몽상을 메타픽션적으로 들려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 이야기는 쓰기에서 읽기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당혹스러운 결말에 이르게도 되는데, 그 과정을 나름대로 상세하게 진술하려고 했습니다.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이 꼭지글은 파이오니아라는 예술 전문 AI가 드디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며, 인간의 오감을 압도하는 작품을 거의 100% 인공지능의 힘으로 창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에- 석하게도
이- 세상은 바뀌었다.
아- 릿한 추억처럼
이- 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을 말하고
의- 연한 척하였다.
시- 시각각 발표되는 인공지능의 작품은 공산품처럼 균질적이고 방대했지만,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대- 세일 뿐 아니라, 영혼이 있는 것이라 착각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모든 재능을 다 가진, 천재 예술가처럼.
♬ 거장 AI, 너의 이름은 파이오니아
다큐멘터리 감독님이자 문우이기도 한 겨울락 님께서 AI에 관한 다큐를 찍는데 저더러 관련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어요. 저번에 술자리에서 그냥 제가 구상하는 AI이야기를 가볍게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막상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그동안 파편적으로 구상하던 이야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웃음)
AI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말을 해보기는 처음이네요.
“첫 인터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쓰다 만 습작 메모를 읽어보기도 했죠.”
강인공지능 예술 창작 AI인 파이오니아의 출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AI가 영화를 창작한다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시기였다. 그럼에도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이었고, 인간과 구분할 필요가 없을 만큼 독창적이었으며, 무엇보다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건 여전히 놀라웠다. 이미 모두가 예견하고 있을 때였다고는 해도, 창작자들로선 그런 존재의 등장이 달가울 순 없었다.
물론 <파이오니아-새벽의 여운>을 본 대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게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파이오니아는 로윈테크놀로지의 예술 파트 대표 AI 이름이었다. 사실 로윈테크가 아니어도 좋다. 다른 멋들어진 이름으로 기업명을 정하여도 좋지만, 여기서 기업이 강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예술 분야의 실험이 괜찮은 성과를 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로부터 예술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AI가 시나리오를 썼다는데, 왜 이리 벅차오르지? 너무 감동적이야!”
<파이오니아-새벽의 여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으로 설정했죠. 언젠가 등장할 줄 알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언제나 파괴력은 위협적이기 마련이고요. 그런 사건이 있기 마련이죠.
<파이오니아-새벽의 여운>은 내용을 딱히 기억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잠깐 소개하자면, 한국의 달 착륙 사건을 역사 드라마로 담아놓은 작품이었어요.
달 기지를 건설하는 내용인데,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거기까지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를 그린, 그러니까 제법 흔한 영화 같았죠. 그런 줄거리에 주인공을 얹어봤자 흔한 줄거리의 주인공이 되곤 해요.
그래서 주인공은 없앨까 했는데, (웃음) 일단 이름을 케이라고 했죠. AI와 공식적으로는 협업하는 감독과 이름이 같네요. 아주 유명한 감독이죠. 젊은 시절 일찍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화감독 정도로 하고요.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하면서요.
케이는 그 날을 잊지 못하는 것으로 하죠. 자신의 다음 작품을 준비하며, 틈틈이 기업에서 제안한 시나리오 감수 역할도 병행했죠. <파이오니아-새벽의 여운>도 케이가 감수했고요. 그때 뭔가 시대가 확실히 전환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인간 예술가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다음 작품 구상이 쉽지 않았다고요.
“인간다운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전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요?”
사실 이 정도죠. 케이를 생각하기 전에 배경을 열심히 생각하다 보니 정작 사건도 인물도 증발했지만, 어쨌든 그러다 보니, 미래 사회에 관한 배경을 잔뜩 구축했죠.
마치 처음부터 풍경화를 그리는 것처럼요. 주인공이 너무 멀리 군중 속에 파묻혀 있어서 딱히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직업을 지녔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게 되었지만요.
“처음엔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어. 너희도 너희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고?”
사실 제가 AI의 다른 분야에 얹을 말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제게 듣고자 하는 내용도 그게 아닌 것 같고요. 일부러 ‘AI와 예술? AI와 창작?’ 그런 맥락으로 따라가다 보니 저작권 이야기로도 흘러갔어요. 그 바람에 그동안 저작권에 대해 고민하던 내용을 정리하면서 AI를 다른 시각으로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게 이번 작품 콘셉트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저작권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냐고요? 글쎄요, AI가 온전한 의지를 지닐 강인공지능 시대나 초인공지능 시대 말고, 그 전에 있을 위협적인 약인공지능 시대에 AI란 아직은 인간에게 도구잖아요.
정말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건 기업의 의지라고 해야 할까요? AI를 활용하여 얻을 무형자산 권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을 기업의 의지요. 탐욕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가제 ‘파이오니아’의 세계관이랄까요? 결국 모양새는 AI의 발전으로 인간 문명이 큰 변화를 맞이하는 거겠지만, 그 알맹이를 들여다 보면, 자본주의의 주체인 기업이 강한 의지로 이익 창출을 위해 세상을 움직인다는 내용이죠.
여기에 AI라는 조건 하나가 덧붙어서 이색적이라 해야 할까요? 어찌 보면 예측할 만한 SF 스토리를 구상했던 거예요.
그때부터 AI가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구상했어요. 그 전까지는 AI라는 소재를 먼 미래에 관한 심심파적 공상쯤으로 여겼죠. 깡통 로봇이 우리가 원하는 걸 모두 계산해준다는 점에서 움직이는 컴퓨터쯤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알파고라는 몸통 없는 인공지능으로 등장하니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공포스럽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죠.
인간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 두려움에는 근거가 있는가,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어떤 것일까. 그런 상상이 느린 조류처럼, 바다를 만나려는 강물처럼 잔잔히 드러나기 시작한 거였어요.
<파이오니아>의 구상 작업은 이를테면 바닷물과 강물, 짠물과 민물이 서서히 섞이는 그 중간 지점의 탐색이랄까요, 나중에 찬찬히 보니 작업 노트에는 그런 느낌으로 아이디어를 쌓아 놓았더라고요. 파편처럼 기록해놓은 이런저런 몽상 말이에요.
“성경에는 적혀있지 않은 것들이었죠. 인간의 삶은 신에게서 너무 멀어져버렸죠.”
주인공 케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를 잠시 뒤로 미루고, 이런저런 배경 구축을 위해 몽상했죠. 미래 소설의 배경을 우선 만들어 놓아야, 그 안에 놓일 사건이라든지 인물이 보일 듯했거든요. 설령 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어떤 시간 안에 놓이는 공간적 배경을 상상하는 건 그 자체로도 재미 있고요.
그 배경 안에서 파이오니아의 등장은 어디쯤 속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 전후 관계를 입체적으로 알 때 이 사건의 의미와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듯했죠.
이 시대를 임의로 AI 시대라 했는데, 2023년도 이미 AI 시대의 초창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은 AI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거나 압도적인 주류적 도구가 아닐 뿐이지만요.
이때 케이는 태어났을까요? 이미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걸음마를 익히고 있을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