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칼럼
[목차: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1. 지식재산권,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
♬ 지식재산권 논의에 앞선 세 가지 전제
♬ 무형자산을 사유재산으로 확보하라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1)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2)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3)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4) ~#5
◑ Part2.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3. 몽상, 예술민주사회주의
- 소비자 입장에서도 기업이 몽땅 남의 무형자산을 은근 슬쩍 점령하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냅스터, 한국의 소리바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 어쨌든 남의 영화나 음악으로 수익을 올리던 헤비 업로더는 그냥 그러한 틈새에 편승한 무임승차자이자 얌체족일 뿐이죠. 거창한 카피레프트 정신을 들먹이는 건, 잠시나마 과학 기술 격차를 없애려는 이상적 움직임을 지지했던 70년대 해커들에게 모욕에 가까웠죠.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4)
그렇다고 너무 억울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기업이 몽땅 남의 무형자산을 은근 슬쩍 점령하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냅스터, 한국의 소리바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리바다가 뜰 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죠? 저도 소리바다에서 음원을 다운로드한 적이 있어요. 당시 CD 위주로 사서 듣는 걸 선호한 바람에 다운로드에 열을 올리지는 않았을 뿐이죠.”
“그때 일부 사람들 중에선 테라바이트 단위로 MP3를 저장해 놓는 경우가 있었는데, 난 솔직히 좀 낯설었거든요. 외장하드란 개념에도 익숙지 않았고요. 그래도 궁금했던 곡을 보면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잠깐 한 곡만 어떤지 들어볼 수 있다면 더더욱 실용적으로 보였거든요. 공짜로 무엇인가를 얻는다고 하니, 그다음엔 당연하게 그래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점이 문제였지만요.”
“그때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말이 많았죠. P2P 형식이었나요? 직접 온라인상에서 중개 사이트가 주관하지만 않으면 처벌 대상이 애매했던 것 같아요. 법망이 아직 정비되지 못했을 때였죠.
소리바다에서 주관하는 줄 알았지만, 소리바다에선 그저 개인끼리 연결되는 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곳에서도 주로 음원을 제공하는 쪽이 있고 주로 받는 쪽이 있었어요. 특히 희귀한 음반은 잘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죠.”
“그 돈이 모이면 종로 청계천 쪽으로 나가서 다닥다닥 붙은 작은 음반점에서 희귀반이라든지, 뭐 그런 음반들을 찾아 구매했어요. CD 여러 장을 만지작거리며 무얼 사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웃음) 해외 직구는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영어 번역의 번거로움을 무릅쓰고도 구매하려고 했죠. 당시 직장인이나 전문가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한가득 음반 쇼핑을 했고요.”
“그때는 록을 들어야 하는지, 재즈를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지 별 시답잖은 고민을 진지하게 했어요. 꼭 한 장르를 고집해서 들어야 할 의무도 없고, 한 음악가의 음반만을 사야 하는 의무도 없는 건데 말이죠.
그때는 음악 애호가라면 지키고 싶은 덕목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디지털 음원에 대한 규제 근거가 미비했기 때문인지 음악 관계자들이 속앓이하기는 했었죠. 한국의 냅스터라고 해야 할까요. 미국에선 냅스터가 소리바다 같은 역할을 했었다고 하잖아요. 이런 사이트를 와레즈(warez) 사이트라고 했었다는데, 이젠 용어 자체가 낯설게 들리네요. 이런 데서 음원을 공짜로 받는 버릇이 생기다 보니, CD 사는 걸 아까워했다죠?”
“그런 시절에 음원에 정당한 가격을 매겨서 유료로 유통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가격을 합당하게 올리고 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던 대기업도 있어서, 그걸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마케팅 포인트로 잡기도 했었죠. 현대였나요? 1곡 당 600원이었나, 1200원이었나. 뭐 그랬던 것 같아요.”
“어쨌든 소리바다도 위축되고, 다양한 음원 서비스가 나오면서, 음원 중심으로 사는 것에도 익숙해졌죠. 소리바다 때문에 음원으로 듣는 습관에 익숙해졌듯이요.
물론 CD를 음원으로 바꾸는 것을 음악 애호가 사이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하나는 음원 손실이 일어난다는 거였어요. 솔직히 320K MP3로 하든 256이든 128이든 잘 모르는데 말이죠. 128일 경우 민감하게 구별해 내는 경우가 있다지만 256만 되어도 잘 모르잖아요.”
“128, 256, 320 이런 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음질과 관련 있었거든요. 320 버전이 우리가 다운받는 음원의 손실률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고 있고요. 아무래도 무손실 웨이브 파일로 하려고 CD에서 추출해야 하고 저장 용량도 많이 필요해서, 명반이 아니라면 굳이 무손실 웨이브 파일로 안 만들곤 했는데, 마니아들의 경우엔 무손실 웨이브 파일로 만들어서 테라바이트 수준으로 외장하드에 넣어 다니는 경우도 많았어요.”
“어쨌든 소리바다도 위축되고, 다양한 음원 서비스가 나오면서, 음원 중심으로 사는 것에도 익숙해졌죠. 소리바다 때문에 음원으로 듣는 습관에 익숙해졌듯이요.
물론 CD를 음원으로 바꾸는 것을 음악 애호가 사이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하나는 음원 손실이 일어난다는 거였는데, 솔직히 320K MP3로 하든 256이든 128이든 잘 모르는데 말이죠. 정말 128은 몰라도 256만 되어도 잘 모르잖아요.”
“128, 256, 320 이런 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음질과 관련 있었거든요. 320 버전이 우리가 다운받는 음원의 손실율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고 있고요. 아무래도 무손실 웨이브 파일로 하려고 CD에서 추출해야 하고 저장 용량도 많이 필요해서, 정말 명반 아니면, 무손실 웨이브 파일로 안 만들곤 했는데, 마니아들의 경우엔 무손실 웨이브 파일로 만들어서 테라바이트 수준으로 외장하드에 넣어다니는 경우도 많았고요.”
“사실 CD와 LP에서도 손실이 없었을까요? 어차피 256과 320의 차이도 잘 모르면서 왜 그토록 집착했을지 몰라요. 아마도 애호가의 자부심이겠죠. (웃음) 그리고 또 하나는 제게 해당하는데 그냥 잘 몰라서 그걸 알고자 하는 게 귀찮아서 CD를 음원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안 했어요.
음원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음악가들도 많았는데, 그걸 굳이 음원으로 바꾸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음원이 많다고 하면, 그냥 공짜로 좀 CD로 ‘구워달라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음원이 편리해서 그런지 점점 생각이 바뀌었어요. 음원을 직접 구매해서 변환 필요 없이 MP3플레이어에 저장하고 다니니 여러모로 편하더라고요. 한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기도 좋고요. 그런 기능 설정이 잘 되어 있었죠. 다음 곡으로 건너뛰기할 때도 훨씬 안정적인 면도 좋았죠.”
공짜에 익숙해진 편리하게 대량으로 언제든 음원을 불법 다운로드 받을 수 있자, 소비자는 음반 사는 것에 인색해졌다. 음반을 대량으로 구매하던 애호가들이라면 그 신념을 버리지 못했더라도, 음원을 먼저 내려 받아 들어보고는 음반 구매 여부를 결정하기도 했다. 사야 할 음반의 수는 어마어마한데, 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유튜브로 먼저 감상하다가 구매를 결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불법 다운로드 하려는 수요가 많다 보니, 음원을 많이 업로드해서 공유하는 이들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일명 헤비 업로더라 불리는 이들이다. 방대한 자료를 올려서 그 대가를 수익으로 전환하는데, 최근까지도 불법 촬영물이나 포르노물에서 헤비 업로더가 득세하고 있다.
고수익을 얻는다고도 하는데, 공유 정신 틈새로 등장했지만 사실 남의 작품으로 몰래 자신들의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범법 행위를 하는 것이겠다.
“헤비 업로더들은 가끔 자신들이 카피레프트 정신을 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던 경우도 있었어요. 소리바다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말이죠. 불법 동영상의 경우엔 일단 그 자체로 불법이지만, 단속이 안 되는 것이었다면, 음원을 무분별하게 다운로드 하는 것에선 제재하는 법규가 정비되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온라인 음원 형태였나, MP3에 관한 기준이 없었다고 기억해요.”
“어쨌든 남의 영화나 음악으로 수익을 올리던 헤비 업로더는 그냥 그러한 틈새에 편승한 무임승차자이자 얌체족일 뿐이죠. 거창한 카피레프트 정신을 들먹이는 건, 잠시나마 과학 기술 격차를 없애려는 이상적 움직임을 지지했던 70년대 해커들에게 모욕에 가까웠죠. 헤비 업로더는 자신들에게 창작물이 있었다면, 피를 토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거예요.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를 수용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