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삭막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꿈을 꾸었다. 새벽녘에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들었을 때 말이다.
그래서인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인연이 긴밀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제껏 나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누군가가 수줍게 웃으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웃음을 기억한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실없고, 어리숙하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그 모습을 좋아했기에 고민하지 않고 그가 건넨 손을 잡았다.
꿈속에서도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결혼이 11일 남았다. 그는 내게 줄 것이 있다며 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책 속에는 나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와 나의 이야기.
세상이 모두 우리를 응원하고 우리의 편인 것만 같았던 날들과 해결하기 쉽지 않았던 다툼과 갈등들. 우리가 공유했던 모든 시간들이 만화책 속 그림처럼 이어지고 있었고,
내가 느낀 무수한 감정을 그 또한 느끼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내 마음은 벅찬 감동으로 시리게 조여왔다. 그러다가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이 떠졌다.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긴장된 아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몽글몽글하고 행복한 꿈에서 살고 싶었다. 행복한 꿈과 불행한 꿈 중 불행한 꿈을 더 많이 꾸는 편이었기에.
아침시간이 늘 바쁘다. 허겁지겁 준비를 마치고 간 직장에서 하루종일 민원을 받았다. 화장실을 가거나 한숨 돌리려 하면 번호표가 쌓일 것 같아
점심을 간신히 먹었다. 아침에 꾸었던 뭉클한 꿈 덕분에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그 꿈이 주는 포근한 감정이 지친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각박하고, 일상은 여전히 삭막하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늘 긴장하기 때문인 걸까.
오늘 아침 꾸었던 생생한 꿈을 통해 나를 웃게 했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거창하진 않지만 하루를 살다가 피식 웃게 되는 일들이었다.
예를 들면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편의점에서 파는 00몬빵 속 띠부띠부씰을 뜯기 전의 긴장감, 희귀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나왔을 때의 환희.
선선해진 출근길에 느껴지는 가을 향기. 퇴근길 백미러로 비친 주홍빛 노을. 오랜만에 온 친구의 연락. 그리고 오랜만에 용기 내서 연락했을 때 나보다 더 반가워했던 친구의 답장.
모두 잊고 살기에는 소중한 것들이었는데, 혼자만의 부정적인 감정이 삶을 잠식하는 속도와 깊이가 워낙에 빠르고 깊었던 탓에
그것들은 오래된 서고 속 책처럼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행복한 기억들은 결코 나 혼자만이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나는 내가 왜 혼자서 아팠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더 이상 장물아비처럼 내 행복을 꽁꽁 품에 안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거인의 정원’ 이야기에서 마지막에 거인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담장을 허문 것처럼,
나도 내가 가진 오래된 서고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속의 책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동안 <나는 왜 혼자서 아플까?>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새로운 브런치북 글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