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제 Dec 27. 2022

"이제부터 공주 놀이 시작이에요!"

나는 공주가 되고 싶지 않은데

언제쯤이었을까, 결혼식 준비에 대한 생각을 모아 글을 한 편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웨딩 플래너와 처음 상담을 하던 날부터였다.



이제부터 공주 놀이 시작이에요!

'공주 놀이'란 무엇인가. 드레스샵 커튼 뒤에서 드레스 피팅을 한 채 수줍은 듯 부케를 들고 웃고 있는 모습, 신부대기실에서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로 앉아 손님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 혼자서는 거동(?)조차 어려운 드레스를 입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버진로드를 걷는 모습 등이 그려졌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나와는 온전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다운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나 결혼식 포맷을 변경하기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에는 절차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예상외로 클리셰적인 이유가 컸다.



1. 아빠와의 동반 입장


예전부터 나는 만약 결혼식을 한다면(과거의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해 신랑에게 손을 건네주는 절차는 생략하고 싶었다. 마치 남자의 비호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자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딸의 소유권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넘어가는 상징적 절차로 여겨지기도 했고.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요즘 트렌드라는 신부 단독 입장을 할 수도 있었다. 단독 입장은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거나, 어쨌든 주체적인 신부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식순을 짜야하는 순간이 오자 나는 아빠 손을 꼭 잡은 채 입장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딸의 결혼식에서 함께 빛날 수 있는 역할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를 생각하면 언제부턴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워낙에 별나고 개성 강한 딸을 키워오면서 곧잘 부딪치고 꺾이기도 했던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서다. 아빠는 내가 자라면서 종종 마주했던 마초적 언사와는 달리 뼛속 깊이 권위적인 가부장이랑은 거리가 먼 심성의 사람이었다. 그러한 본질을 마주하고 나서는 아빠를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아빠와의 결혼식 동반 입장 절차를 굳이 굳이 거부하는 것은 별것도 아닌 선물을 빼앗는 치사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의 동반 입장이라는 절차를 식순에 넣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식장 문이 열렸을 때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빠와 손을 잡는 순간은 더없이 행복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2. '헬퍼 이모'와 웨딩 산업 구조의 다이내믹


처음에는 헬퍼(드레스 피팅, 신부 입장 전후로 온갖 매무새 정리 등을 도와주시는 분) 없이 할 수 있는 결혼식이 있는지 알아봤었다. '완벽한 공주'를 만들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기 때문이다. 헬퍼의 도움 없이 결혼식을 치르려면 우선 미니드레스를 입는 게 필수였다. 그러나 막상 드레스샵에서 피팅을 해보니 미니드레스는 2부 피로연 드레스가 중심이라 예쁜 디자인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풍성 라인이 아닌 짧은 머메이드 라인드레스를 골랐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입장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주체적인 신부가 되어야 한다'라는 스스로가 부여한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헬퍼 이모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조금 이상하지만 웨딩 산업에서는 이들을 '이모'라고 부른다. 이모는 통상 가족 내에서 쓰이는 명칭이지 않나. 식당 종업원 등 각종 서비스 업계에 종사하는 중년여성을 지칭할 때 종종 쓰이기도 하는 이 말은 고용-노동 관계 및 그 안에 숨겨진 권력성을 비가시화한다. '이모'라는 단어는 중년여성들이 어떤 온정주의에 기반해 일을 하는 것처럼 뭉뚱그리고, 전문성 부재를 전제한다. 가족주의적 맥락은 중년여성의 노동을 정식 노동으로 대우하지 않고, 하나의 온정적 행위로 치환해 버린다. 마치 무임금 가사노동처럼 말이다.


이처럼 목가적인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모'라는 명칭과는 달리, 실제 결혼식을 치러보니 이분들은 드레스 피팅에서부터 식 당일에 신부신랑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변수에 대처하는 핵심 인력이었다. 결혼식은 누구나 평생 한 번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만큼 무엇보다 위기관리가 중요한 행사다. 따라서 다 년 간의 경험이 없다면 여러 돌발 상황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물론 식장 측에서도 위기관리의 의무는 있으나, 신랑신부의 신변(?)을 가장 가까이서 챙기는 것이 헬퍼 이모의 몫이었다.


헬퍼 이모는 드레스 업체와 전속 고용관계에 있다. 이들의 노동을 제대로 대우하려면 '이모'가 아닌 다른 적절한 명칭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비용 또한 20~30만 원 정도로 비싸다. 드레스샵에서 커미션을 얼마나 가져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웨딩 산업은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게끔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 플래너 업체, 예식장, 드레스샵, 메이크업샵, 혼수회사, 여행사 등... 셀 수도 없는 업체가 얽히고설켜 신랑신부의 돈을 뜯어갔다. 눈뜨고 코베이는 게 바로 웨딩 산업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3. 태어나 처음으로 웨딩 산업에서 '제1 소비자' 대우를 받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소비의 맥락에서 남자의 상위 주체로 여겨져 본 적이 없는 듯했다. 이를테면 남자와 여자가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계산할 때면 캐셔는 우선 남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커플이 둘이 부동산 상담 등을 받으러 가면 주로 남자 쪽을 보며 설명한다. 이처럼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게 남자 쪽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소비 권력은 남성의 손에 있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웨딩 산업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신랑의 의사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신부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건넨다. 결혼이라는 영역에서만큼은 여자들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한테?'라는 느낌이 든다. 남자를 능가하는 소비 주체로 간주된 적이 없는 나에게 갑자기 선택권을 주니 놀랄 수밖에. 다른 커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신랑이 광고 업계 종사자고 필자는 공무원이라 남자 쪽의 비주얼적 감각이 더 뛰어나다. 나는 미적으로 그다지 예민하지 않아서 드레스든 메이크업이든 그저 신랑이 골라주기만을 바랐다. 그런데도 자꾸 나를 쳐다보며 설명하는 테이블 너머의 눈빛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결혼은 여전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일, 부동산 등 공적 영역은 남성이, 결혼식 같은 사적 영역은 여성이 담당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식은 곧잘 '여자의 로망'으로 포장된다. 미디어에 재현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결혼식의 이미지는 항상 여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혼식을 욕망하지 않는 여자는 전통적 여성성에서 벗어난 것처럼 간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 '공주 놀이'라는 말에 감춰진 현실


'공주 놀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여전히 여성에게 조금은 가혹한, 결혼 뒤의 팍팍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


너는 오늘 공주가 될 거야. 오로지 오늘 딱 하루 동안만.

웨딩 카페에는 프러포즈, 예물, 허니문 등의 적정 시세가 정답처럼 유통된다. 오성급 호텔 명품백 가격대, 핫한 신혼여행지 등등.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예식 준비를 끝내고 나면 과연 여자들에게 그에 준하는 결혼 생활이 펼쳐지는가 하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웨딩 카페 내에서는 예비 신랑신부의 연봉을 오픈하며 서로의 수준을 확인하는 게시물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좌절감을 안겨주는 집값 변동, 인플레 속 쉽지 않은 투자 환경 속에서 남들과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 건 결혼식뿐이다.


결혼 전에는 업체 및 예산을 공유하다가,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예식 준비 꿀팁 등 피드백을 공유하고, 웨딩 사진 셀렉 후에는 일 년 내내 100가지 배리에이션으로 SNS에 포스팅하면서 일명 '웨딩 앓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 접하지 못하는 여러 호사스러운 서비스(피부 시술부터 시작해 메이크업, 드레스 피팅 등)를 결혼 준비하면서 집약적으로 누리고, 이러한 모습의 정수를 전시하는 게 바로 예식날이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 평민들이 혼사를 치르는 날에만 양반이 입는 비단옷을 입을 수 있도록 허용되었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현실은 고강도의 다이어트와 힘든 식단에 지쳐 당일에 느끼는 감정은 해방이고 뭐고 그저 지침과 배고픔뿐이나(내 얘기다...), 어쨌든 남들 눈에는 '공주'로 재탄생되고 결혼이라는 근대적 낭만 서사가 덧씌워진다. 여기에 약간의 눈물이 더해지면 금상첨화...


진짜 공주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결혼식의 '일일 공주 놀이'에 집착하지 않을 테다. 어차피 결혼식이 끝나고도 공주는 공주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비 신부들이 공주 놀이에 집착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그날을 제외한 모든 날은 공주가 될 수 없다는 씁쓸한 방증이다. 그래서 결혼식이란 팍팍한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존재증명을 둘러싼 자존감 싸움이며, 가질 수 없는 걸 흉내내기 위한 이들의 인정투쟁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에게 부여된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결혼식날 왕자가 되지 않아도 충분한 남자들과, 기필코 공주가 되어야만 하는 여자들. 그 뒤엔 나이가 들수록 여성들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공주든 공주가 아니든, 여자라서 햄볶든 햄볶지 않든, 결혼 그리고 결혼식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다. 부디 많은 여성들이 결혼식에서 '공주 놀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그들만의 파티를 열었으면 한다.

이전 06화 설렘보다 편안한 연애가 좋아질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