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동태전을 부치면서 든 소회
새실에게
안녕. 어둠이 차분히 내려앉은 저녁이야. 어릴 때부터 나는 어둑어둑해진 밤을 좋아했었어.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나 혼자 깨어있는 그 느낌이 제법 근사했거든. 물론 지금은 모두가 잠들어있진 않고(우리 가족은 모두 깨어있고) 도시의 소음이 간간히 들리긴 하지만. 들뜬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 어스름보다 좋은 묘약은 없는 것 같아.
아까 침대에 누워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엄마가 요리하자고 나를 부르더라. 장을 보고 온 뒤였어. 부엌에 가보니 식탁엔 손질된 동태들이 부침가루 옆에 누워있었어. "뭐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엄마는 차근차근 가르쳐줬어. "소금과 후추를 조금 뿌리고 부침가루를 묻혀, 수지야." 엄마가 할 땐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잘 안 되는 거야. 소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든지, 후추가 골고루 안 뿌려진다든지. 여차저차 다했다고 보고하니, 엄마는 이젠 거기다 계란옷을 입혀 튀기면 된다고 알려주었어. "이제부턴 엄마가 할게." 아니, 그런데 뭔가 그때부턴 이 동태전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아냐, 내가 할게." 하고 젓가락을 들어 프라이팬에 전을 부치기 시작했어.
문득 '계란옷을 입힌다'는 의인화된 표현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프라이팬 한 판을 채웠어. 전을 올리자마자 "언제 뒤집으면 돼?"라고 물어보면서 종종거리는 성격 급한 내가 웃기기도 하면서. "익을 때까지 좀 기다려야지." 엄마가 옆에서 그렇게 말하는데, 그 장면에는 왠지 모르게 찡한 구석이 있었어. 전이 노릇노릇 익으며 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데 너무 애틋한 거 있지.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오르는 거야. 초등학생 때 같이 튀김옷 입히며 돈가스를 만들었던 기억. 중학교 때 학교 끝나고 학원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집 밖에서부터 밥하는 냄새가 나서 킁킁거리면서 들어왔던 기억. 그렇게 문을 열면 느껴지는 따뜻하고 맛있는 기운 같은 거.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그림이란 그런 거였어. 부엌에서 무언가 튀겨지고 볶아지고 구워지는 냄새.
그러면서 얼마 전 우리가 이슬아 책에서 보았던 표현 하나가 부엌 타일 위로 두둥실 떠오르더라. '사랑을 책임질 준비가 된 사람의 구체성.' 나는 이제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려고 하면서, 가족이라는 것의 이미지조차 상상해보지 않았던 거야. 가족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존재였던 거야. 물성을 가진, 냄새와 촉감이 있는 존재. 가족은 결혼만 하고 한 공간 안에 있다고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행하는 것'이었던 거지. 애정표현 가지고 실랑이하면서 원하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뾰로통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니라,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고 밥상을 차려내는 것. 내 머릿속에서 씨름할 게 아니라 이불 밖으로 나와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일 말이야.
우리는 벚꽃이 흐드러진 봄에 만나 연애를 시작했어. 과정은 로맨틱했고 사랑스러웠지. 아직도 새실을 보면 설레. 한 사람과의 영원한 사랑을 처음 꿈꿔보게 됐어. 널 만나기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야. 어저께 들춰본 일기장 속에서도 난 결혼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더라. 그런데 널 만나고 결혼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정언명령이 되었잖아. 우리가 자연스레 결혼을 결심한 후로, 연애와 결혼이 그냥 맞닿아있는 것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아. 그저 물 흐르듯 연결되겠지 하고 말았어. 그런데 결혼이란 확실히 연애와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 것 같아. 결혼이란 한 여름밤의 연애처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일이 아니야.
처음에는 연애와 사랑조차 구분하지 못했던 나였잖아. 이전까지 나에게 연애란 상대를 끊임없이 시험에 빠뜨리고,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는 게임과 다를 바 없었어. 이를테면 김금희 소설 속 문장 같은 거.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중략)
“내일은?”
“모르겠어요.”
정열과 사랑이 동의어라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널 만나기 전까지 자주 불행했어. 안정이라는 단어에 코웃음을 친 나날도 있었지.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는 안정감 속에서도 괜찮다는 걸 너를 통해 처음으로 경험했고, 신뢰란 얼마나 멋진 건지도 배웠지. 넌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제야 '게임 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현실을 걸어 다녔어. 버려지고 버림받는 상상 없이도 사랑한다는 것. 낯선 첫 보금자리. 확신에 찬 네 눈빛이, 방향을 아는 네 손길이 정확하고 따뜻했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끝났지만, 그래서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게 없었어. 내가 종종 물었잖아. 왜 나랑 결혼을 하려고 해? 결혼이란 뭐라고 생각해? 그런 질문들. 분명한 건 결혼은 하나의 이벤트만은 아닌 것 같아. 결혼식은 단 하루겠지만 우리 앞에 놓인 세월은 그 후로도 지속되잖아. 그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상상력이 그간 내겐 너무 빈약했던 것 같아. 그래, 우린 가족이 되려는 거였어. 가족이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잖아. 같이 살아가는 구성원은 힘들고 불편한 날들까지도 함께 감수해야 하는 거잖아. 좋은 모습만 보일 수는 없잖아. 그걸 회피하려면 적당한 선을 지키고 서로를 책임지지 않는 연애만 하면 되지. 결혼을 하기로 한 이상, 내 각오는 더 구체적이어야만 해. 매일매일 돈도 벌어와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투자 공부도 해야 하고. 애가 태어나면 책임질 일들은 배로 더 많아지겠지. 그 과정에서 힘들다고 인상 찌푸리는 일이 좀 많을까? 그런 생각에 이르니, 내가 어제 애정표현 한 마디 덜 들었다고 투정 부린다는 게 갑자기 아득해지는 거야. 나는 결혼을 준비한다면서 스스로 뭐 하나라도 제대로 결심한 것이 있었나 싶더라고.
이 모든 게 동태전을 튀기면서 시작된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했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해. 새실에게 생활력을 운운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생활력이 없었어. 공부? 직장일? 돈 버는 것? 그런 건 식은 죽 먹기야. 숨 쉬는 거랑 같은 거지. 진정한 생활력은 마음에서 오는 거라고 봐. 매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동력을 만드는 것. 상대가 배가 아프면 쓰다듬어주고 지치면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것. 사는 일이 그렇잖아. 삶이란 지리멸렬하다가도 종종 황홀하기도 하고 그렇잖아. 우린 목각인형이 아니고 서로는 한갓 연애 상대가 아니잖아. 전혜린 말처럼, 진정한 사랑이란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해.
난 이제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준비를 할 거야. 해가 쬐면 쬐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을 준비를 할 거야. 부침가루와 계란옷을 입혀서 책임감 있게 끝까지 전을 부칠 거야. 이것이야말로 사랑에 대한 구체적 책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