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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Nov 05. 2023

결혼식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삶의 계산서엔 예외가 없다

삶의 계산서는 어디서든 따라붙으며 무섭고도 치밀하다는 사실을 아는 터라,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빌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결혼이 낭만으로만 점철된 영화 한 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라는 데에 동감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부터 각자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매기고 이를 교환했다.


나 : > 결혼식 > 혼수> 신혼여행

남편 :  > 혼수 > 결혼식 > 신혼여행


예식과 혼수라는 2, 3위를 제외하면 1, 4순위가 같다는 데에 우리는 크게 안도했다. 그래서 정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내 집 마련은 무조건 한다.

2) 예식은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이니,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생각보다 손님들이 와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다.

3) 혼수는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살면서 채운다.

4) 신혼여행은 배낭여행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원칙대로 준비했고,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4가지 부문에서 모두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다.



첫째, 내 집 마련


우리는 당시 유명하다는 부동산 강의를 같이 찾아 들으면서 뻔질나게 임장을 다녔고,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선의 매물을 찾아 매매를 했다. 80% 이상 대출을 끼고, 집값이 본격 폭락하기 전 (상투까진 아니고) 어깨 정도에 사긴 했지만 나름대로 만족한다.


호갱노노 실거래가 알림에서 우리가 매매한 값보다 1억 이상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 며칠간은 다소 낙담하긴 했지만, 인생은 길고 우리는 투자에 대해서 계속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는 걸 상기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반셀프 인테리어를 싹 하고 들어온 이 집에 대한 애정이 큰 데다가, 안정감을 주는 데는 '내 돈 내 집' 만한 게 없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많기도 해서다.




둘째, 예식


예식은 우리가 아니라 손님들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사회자가 하객들에게 감사표시를 하듯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 시간을 파티처럼 즐겼으면 했다.


식장을 계약할 때는 반야외 가든 스타일의 베뉴를 보고 반해서 계약했고, 예산에 맞춰 저녁 타임으로 골랐다. (토요일 2시 프라임 타임보다 대관료에서 거의 800만 원 정도 차이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 덕에 야외에서 서서 손님맞이를 하는 공간에서 재즈공연과 함께 와인바를 열어 손님들에게 웰컴 와인을 한 잔씩 대접할 수 있었다.


예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술을 몇 잔씩 걸쳐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은 벌게진 얼굴로 내게 다가와 축하의 말을 전하거나, 정원에서 저마다 자유롭게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나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무엇보다 놀러 온 이들이 즐겁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무엇보다 손님대접은 후하게 해야 한다는 면에서 생각이 정확히 일치했다. 주차장의 넓이, 편리성을 눈여겨봤고 정신없는 뷔페가 아닌 정갈한 한상차림까지도 하나하나 신경 썼다.





셋째, 혼수


입주 후 우리 집은 새 침대 대신 남편이 쓰던 매트리스, 비싼 다이닝테이블 대신 남편이 쓰던 식탁, 최신형 티브이 대신 남편이 쓰던 빔프로젝터... 결혼 전 남편이 쓰던 것들로 거의 채워졌다. 하지만 여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전만큼은 중요한 터라, 친구 패밀리 할인을 통해 저렴하게 계약해서 건조기에서부터 식세기까지 모두 꽉꽉 채워 넣었고 지금도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건조기와 식세기는 부부싸움을 줄여준다... 이건 결혼을 앞둔 친구들에게 무조건 리마인드 해주는 꿀팁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결혼 1년 후까지도 목돈 들어갈 일이 꾸준히 생겼다. 낡고 딱딱한 매트리스와 함께 두 계절을 보낸 이후 수면의 질을 올려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마침내 값비싼 이스턴킹 사이즈의 매트리스와 침대 프레임을 구입했다. 독서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근으로 패브릭 소파를 마련했고, 얼마 전 거실에서 함께 한일전 축구경기를 볼 수 없다는 데 답답함을 느껴 스마트티브이를 구매했다. 입주와 동시에 모든 걸 한 번에 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만의 속도로 필요한 물건을 들인 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넷째, 신혼여행


웨딩 카페에서 이야기하는 신혼여행 예산은 천차만별이다. 댓글 다는 사람들 기준으로만 본다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는 잡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신혼여행 예산을 4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왜냐! 우선순위에서 제일 아래였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결혼식을 해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품앗이 같은 축의금이 적지 않게 모인다. (하지만 이건 내 돈이 아니고 언젠가 다시 페이백해야 할, 쉽게 말해 꾼 돈이다)


그리고 우리는 허니문을 정확하게 3,926,844원으로 다녀왔다. 11박 12일이었다. 항공권, 숙소, 여행경비, 기념품, 하다못해 공항버스 발권값까지도 모든 것 다 포함해서다. 예산 절감 꿀팁 공유가 이 글의 목적은 아니므로 디테일은 생략하도록 한다. 물론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커플로서 신행이 곧 우리가 함께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던 탓에 나라 선정 단계에서부터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어디든 괜찮다던 남편은 더운 나라와 향신료에 쥐약이었다...)




결혼 1주년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결혼은 어떤 그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다. 연애 초반에 그토록 띵언을 남기던 사람이 실은 게으름이라는 단점을 갖고 있기도 하고, 누가 더 깔끔한가 혹은 무엇에 더 예민하냐의 문제는 무려 반년 정도의 조율 기간을 필요로 한다. 여전히 각자의 삶의 패턴이나 집안일 문제로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많이 높아진 상태다.


애 때부터 시작한 '매달 가계부 쓰기'를 여전히 실천하면서 월말엔 금융 상태를 점검한다. 부부란 경제공동체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명이 공세적 투자 성향을 갖고 있다면, 다른 한 명은 골키퍼 역할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혼 이후의 이야기들은 평온하고 또 자연스럽다. 조금씩 타협하고 그만큼 배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부턴 2세 계획도 세우고 있다. 임신을 하고 우리가 아이를 갖게 되면 또 삶의 빛깔이 어떻게 달라질까. 내일의 우리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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