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에 입주했다. 신혼집에서 짧지만 긴 3주를 보낸 소감을 간단히 써보자면,
1. 30년 넘게 서로 다른 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삶을 합친다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를 경험하고 맞춰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재미있다.
2. 둘이 살면서 아직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예컨대 일기나 브런치 글은 어떤 시간에 써야 할지 등등... 이에 대한 뚜렷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루하루 흐르면서 점점 더 감을 잡게 되겠지. 뭐든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3. 건강하고 책임감 있게 살게 되는 것이 좋다. 부모의 돌봄 노동, 정신적 지지 등에 기대지 않고 살기. 파트너와는 혈연 같은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 좀 더 사회적이면서 규율이 필요한 관계니까.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삶을 꾸려나가면서 내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딛고 살아간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4. 요리에 소질은 없지만 밀키트 시장의 번성기(?)에 편승해 잘 먹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밀키트보다 내 레시피가 더 맛있다는 메뉴도 생겼고 말이다.
5. 남편이 있다는 게 새삼 좋다. 아프고 힘든 밤에는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엄마한테는 투정 부리거나 약한 소리 하기 싫어하는 딸이지만, 남편한테는 그런 모습을 더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는 나여서. 남편은 내가 자다가 덥다고 하면 에어컨도 켜주고 정수리에 뽀뽀도 해준다. 옆구리 시려서 다가가면 꼭 안아주기도 하고. 남편 좋다는 게 이런 건가.
6. 부부는 커플과 달리 경제공동체라는 게 이제 실감 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통장을 합치니 상대방의 지출도 나의 지출이 된다. 돈이 두 배로 빠져나가는 게 보이니까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겠다 싶다. 돈이 새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우리 둘 모두의 몫이다. 당분간은 대출 원리금과 가전 할부금 상환으로 남는 것도 없겠지. 향후 몇 개월은 꼼짝없이 마이너스 생활이다... 현명한 금융생활을 다시 한 번 또 다짐.
7. 결혼 후 뭐든 소화도 잘 시키고 잠도 잘 잔다. 원래 위장도 엄청 예민하고 잠귀도 밝은 나인데 마음이 편해진 덕인가보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노트북을 펼쳐 각자의 방식에 맞게 한 주를 정리하는 이 시간이 참 귀하고 예쁘다. 곧 잠자리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