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임신을 하면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녀야 하는가. 나는 평소에 옷 입는 것에 보통 이하의 관심만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걸 임신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원했던 임신이었기에 변화하는 내 몸을 마냥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처음에 배가 나올 땐 만삭 임산부처럼 동그랗고 예쁘게 자리를 잡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똥배'처럼 보인다. 과식을 해서 나오는 그런 배 모양처럼 말이다. 그래서 몸의 라인이 잡히는 옷이나 배가 부각되는 옷을 입으면 하루종일 신경이 쓰인다.
최근엔 무슨 옷을 입어도 옷태가 안 나고 임신부 같아서 그만 남편을 붙잡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남편은 '정말 미안하지만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다'라면서 눈물콧물까지 흘리며 웃었지만... 17주 차 정도부터 아기가 폭풍성장을 한다더니, 그때부터 배가 티 나게 나오기 시작해서 그나마 허리가 잠기던 H라인 치마들도 안녕해버리고 정말 입을 옷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파는 임부복은 이 시기에만 입을 수 있게 허리와 배 부분이 특수하게 제작된 옷이 많아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임부복 대신에 출산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오버핏 원피스나 허리밴딩이 넉넉한 롱치마 같은 걸 찾아보고 있다. 아무튼 임신부인데 임신부 티 안 날 수 있는 옷을 자꾸 찾으려니까 없는 것이다. 배 나온 걸 자꾸 가리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예쁘게 돋보이도록 하는 옷들을 찾고 있다.
임신부인데 임신부 티 좀 나면 어떤가.
2. 몸무게에 대한 고민
병원에 갈 때마다 몸무게를 잰다. 현재는 57.7kg로 평소보다 4~5kg 정도 몸무게가 는 상태다. 방금도 '찐 상태'라고 썼다가 단어를 고쳤는데, '몸무게가 쪘다' 하면 마치 오롯이 내 살이 불어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어에서도 임신부가 '배가 나왔다'라고 할 때 stomach(또는 abdomen)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baby bump이라고 표현 한다고 한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배가 아니라 아기 주머니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엔 인터넷 커뮤니티 임신 관련 게시판에 보면 임신 이후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냐는 게시물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댓글에는 몸무게를 서로 비교하면서 자책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저만 너무 많이 찐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와 함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느니, 식단과 운동으로 관리를 해야겠다는 댓글도 달린다. 본인이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 등 임신 중에도 얼마나 빡세게 관리를 하고 있는지 자랑하는 글도 많다.
물론 임신 중 지나친 체중 증가는 당뇨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고, 아이와 산모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체적 이점 측면에서도 건강한 식단과 적절한 운동은 득이 된다. 하지만 '다이어트'라는 말이 종종 보일 때마다 마음이 어쩐지 얼얼하다. 임신부마저 남들 눈을 의식해 '살을 많이 찌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뭐든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임신의 경험이 제각각이듯 몸의 변화는 개별적이므로, 몸무게가 얼마나 느는지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담당 의사와 상담하고 내 건강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다. 게다가 연구결과에 의하면 임신 중 영양섭취 부족이나 조산으로 인해 출생 시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는 성장하면서 모자란 영양소를 몸에 곧장 저장하려는 체질이 강해져서, 이후 비만 등 성인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접하고 나니 단순히 산모의 '몸무게 증가'를 경계해야 한다는 컨셉이 얼마나 단순하고 위험한 발상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도 이제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수영할 때도 발차기 속도 등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오랜만에 스트레칭을 하면 곳곳이 묵직하고 뻐근해서 쉽게 지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잘 챙겨 먹고 부지런히 움직여줘야 임신 기간 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단축근무로 일찍 퇴근하니까 집에 와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런 때를 잘 활용해서 스스로 요리를 해 먹으면서 나를 잘 대접하고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주엔 또 뭘 해 먹을까, 행복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