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제 Nov 11. 2024

공무원 임산부의 좌충우돌 회사생활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도 맞지만

임신도 처음이지만, 임신한 상태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 또한 처음 겪는 일이다. 배가 불러오면서 평소처럼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공무원이기에 모성보호시간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고, 육아휴직 후 내 책상이 사라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매우 다행이었다. 반면에 임신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 몸의 변화에 대한 무례한 평가 등은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초기의 배려


임신 5~6주 차쯤 회사에 일찍이 임신 사실을 알렸다. 부장님, 과장님 등 직속 상사에게 물론이고 같은 팀 선배긴밀히 협업해야 하는 사무실 동료들에게도 공유했다. 임신한 이상 한 사람 몫을 해내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길 것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누리는 권리 또한 당연한 게 아니고,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쁠 때 나만 일찍 들어가야 할 때면 죄송하다는 말을 꼭 남기곤 했다. 물론 임신한 것 자체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만, 모두가 정상근무를 할 때 나만 퇴근하는 입장이 되면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내 몫을 다 해내고 오면 상관없지만, 피치 못하게 누군가 뒷감당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일하다 보면 올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감사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입덧이 가장 심할 때, 그리고 피곤함이 몰려올 때 단축근무로 4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뭔가 거창한 것을 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만,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잠을 잤다. 아침저녁으로 1시간 이상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면 평소보다 2시간가량 더 자는 셈이었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지만,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게 남의 상황을 평가하는 말을 내뱉곤 한다.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에는 주변에서 임신한 사람을 만나는 게 엄청나게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동료의 임신 사실이나 임산부의 몸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는 편이다. 본인(또는 본인 배우자가) 임신-출산-육아를 겪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이라는 한정된 거울에 비추어 오히려 더 쉽게 말을 던진다.


일례로 내가 최근에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몇 개월 됐어요?

- 5개월 정도 됐어요.

- 이제 5개월인데... 배가... 많이 나왔네? 원래 5개월이면 그 정도 나왔었나?


아직 배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였는데, 타인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다소 이상했다. 주수에 비해 살이 쪘다고 돌려 말하는 건가? 내가 예민한 시기인 탓도 있지만, 아무튼 평소에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듣는 것은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임이 분명하다.


사람을 만나면 시선이 배에 꽂히면서 '이제 임신한 티가 나네요' '배가 조금 나왔네요' 등등의 이야기는 평소에도 꽤 자주 듣는 편이다. 물론 사람들은 정말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이고 아무런 악의도 없겠지만... 일부 임산부에게는 타인의 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나조차도 임신하기 전에 다른 임산부에게 그런 을 던진 적이 있으므로...)


만약 임신한 사람에게 관심의 표현을 하고 싶다면 다짜고짜 몸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기보다는 '요즘 컨디션은 어때?' '요즘 임신 증상은 어떤 걸 겪고 있어?'라든지, 상대방의 상태에 대한 질문을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또 한 번은 성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 아이 성별은 나왔어요?

- 아들이에요.

- (갑자기 표정이 확 굳어지면서) 아유 그래. 둘째는 딸 낳으면 되지. 둘째도 낳을 거지?


본인이 선호하는 성별(딸)이 아니라는 멋대로 내 기분과 감정을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낳으면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둘째 얘기를 쉽게 꺼내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아이 양육비라도 보태줄 거냐고! 당돌하게 묻고 싶지만 '일단 첫째 낳아서 1년 이상 길러보고 생각하려고요...'라면서 웃고 넘어간다.


실제로 둘째는 우리 부부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의 성향도 봐야 하고, 동생이 생기는 것에 대해 첫째에게 동의를 구할 수 있다면 최고로 좋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대화해 본 결과 개별 아이의 육아 및 관계 형성 면에서 연년생이나 2년 텀은 너무 가깝고, 3~4살 정도의 텀을 두고 낳고 싶다. 첫째 아이가 서너 살 정도 될 무렵에는 가족 구성에 대한 설득과 협조를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런 우리의 생각과는 별개로... 당연히 둘째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들으면 곤란하다. 가족 구성원 이야기는 가족끼리 상의할 문제다.




공무원인 나는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사기업에 다니는 경우에는 모성보호시간을 일정 기간(임신 12주 차 이내 또는 36주 차 이후)에만 쓸 수 있고, 육아휴직 관련해서 눈치를 주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여초 직장에 다니는 경우 기혼 여성에게 로테이션(?)으로 임신을 하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일도 있다. 임신 커뮤니티에는 이런 푸념 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https://www.mk.co.kr/news/society/11164326


권리를 찾으려면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도 권리가 제대로 주어질 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위의 기사만 봐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불완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출생 문제 해결에는 제도와 인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 06화 임산부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