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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Nov 17. 2024

태교여행이란 무엇인가

인스타그램 시대의 임신

"태교여행은 안 가?"


임신 중기에 접어들고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하나 떠오른다. 태교여행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요즘은 '태교'가 붙은 신조어들이 정말 많아졌다. 태교여행, 태교동화, 태교영어, 태교음악, 태교OO... 무슨 단어든 태교라는 글자만 갖다 붙이면 다 성립될 정도로 말이다.


태교(胎敎) : 임신부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말과 행동 · 마음가짐 등을 조심하는 교육활동.


애초에 태교의 사전적 정의는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는 행동을 의미한다. 어쩌다 우리는 태교여행을 임신 중 한 번쯤은 (그것도 가능하다면 해외로) 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우선 당연하게도 SNS의 영향이 클 것이다. 프러포즈, 예식, 허니문 등으로 이어지는 결혼 문화의 연장선상이다. 임신, 출산, 육아도 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해외 휴양지에서 태교여행을 즐기는 친구의 사진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오면, '나도...'라는 마음이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에 '남들이 하는 건 다 한다'는 식의 한국식 정서와 맞물리면 태교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트렌드가 탄생한다.



반면, 이름만 '태교여행'이지 임신 중에도 여행을 다닐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는데 임신했다고 여행을 못 다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임신 초기면 몰라도 안정기가 되었으니 여행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간 김에 사진도 찍어서 올리고 말이다. 또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당분간 육아에 전념해야 하므로 여러 제약이 생기고 여행을 떠나기 어려워지는데, 임신 중에라도 자유롭게 다니면서 즐기는 게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이것 또한 백 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하지만 임신 중에는 언제나 크든 작든 리스크가 따른다. 초기에는 유산, 중~후기에는 조산의 위험성도 있고, 장거리 이동 중에 겪게 될 다양한 변수 대처의 어려움이라든지 위생상의 문제점도 따른다. 해외여행이라면 먹는 물과 음식이 바뀌면서 배탈이 나거나 식중독에 걸릴 위험성도 있다. 임신 중에는 먹을 수 있는 약의 종류도 제한되어 있고, 현지에서 위급상황 발생 시 적절한 처방약을 구할 수 있을지 여부도 미지수다.



아무튼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여행에서 오는 즐거움이 더 크다면 태교여행을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임산부가 만족하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엄마가 행복하면 태교 아닌가.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걱정이 많은 임산부이고, 체력과 멘털이 딱히 강하지도 않기 때문에 해외 태교여행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 어딘가 가고 싶다면 국내에서 먹방여행이나 호캉스를 갈 수도 있겠지만, 임신 중에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아 먹방여행도 딱히 재미가 없고, 나는 애초에 호캉스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장거리 운전을 해서 먼 곳에 가려면 아무리 조수석이라도 해도 계속 한 자리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게다가 해안가로 여행을 떠난다면 회에 소주 한 잔은 근본 아닌가...(!) 아무리 못해도 간장게장 정식이라도 먹어줘야 하는데, 놀라운 건 이 중 어느 하나도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임산부에게는 되도록 날 것을 먹지 말도록 권고한다) 그렇다면 여행은 도대체 뭐 하러 가는가. (눈물) 실제로 얼마 전, 가을맞이로 그나마 가까운 태안의 한 리조트를 예약해서 1박 2일로 다녀왔지만 회도 간장게장도 맥주도 먹을 수 없었다... 스파나 풀에 들어가려면 대중목욕시설 등 이용해야 하는데, 딱히 추가요금을 내고 거기에 들어갈 마음나지 않았다. 그냥 방에서 간단하게 오션뷰 보고, 아침에 조식 뷔페 먹고 온 셈이었다.



위에 서술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외 태교여행은 안 가냐는 물음에 '별로 갈 생각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여행을 가는데도 여행의 재미를 하나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앙꼬 없는 붕어빵이다) 심지어 평소보다 조금만 더 걷거나 활동량이 많아져도 쉽게 지치는데 해외여행은 그야말로 사치다.


'태교'라는 본래 뜻에 맞게 임신 기간 동안 말과 행동, 마음가짐을 조심하는 시기로 삼고 싶다. 요즘 사람들에게서 '임신하고 유독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그 말이 참 듣기가 좋다. 작은 것에도 반응하고 만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예민하게 살았던 내가 임신하고 나서는 조금은 나를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다. 늘 목표지향적 삶을 살았는데, 성취감 없이도 지금 이 상태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무엇이 건강한 삶인지, 나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등을 본능적으로 더 잘 판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진짜 태교란 무엇보다 나를 잘 알고, 내가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서 그 시간을 잘 누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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