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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Nov 24. 2024

임신부도 예쁘게 하고 다니고 싶어

임신부의 슬기로운 패션생활

보통의 임신부를 떠올리면 허리라인이 없는 통자 원피스에 화장기 없이 다니는 모습이 주로 연상된다. 하지만 평소에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임신해도 예쁘게 하고 다니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임신부의 OOTD(?)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세간에 알려진 게 없다. 나도 임신을 하기 전에는 대충 임부복 몇 벌 사서 돌려 입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였다. 하지만 임신부의 패션세계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걸 임신 중기에 접어들고서야 알게 되었다.



임신부여도 만삭 임신부만 있는 게 아니라 시기에 따라 다양한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임신 초기 티가 잘 나지 않는 단계의 미세한 불편함부터 막달 D라인까지 다양하다. 사람마다 본래 갖고 있던 체형과 배가 나오는 양상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20주차까지 배가 안 나와 평소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임신 4주 차부터 평소 입던 바지가 안 잠겼다. 


일단 배 부분이 조이는 옷을 입기 힘들기 때문에, 훅이 달린 바지부터 장롱 속에 고이 잠들기 시작한다. 하의에 제약이 많아지므로 처음엔 역시 임부복의 클리셰인 원피스를 찾게 된다. 1) 원피스 단독으로 입기, 2) 원피스 위에 조끼 걸치기 등 배리에이션을 주다가 질리면, 그다음에 찾게 되는 게 뷔스티에 원피스다. 뷔스티에 원피스 안에 목티를 받쳐 입고 재킷과 카디건을 걸치면 각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원피스는 '나 임산부야!' 하는 느낌을 제일 많이 주는 옷이기 때문에 질리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또다시 가능한 투피스 조합으로 돌아가면 된다. 처음엔 뒷밴딩이 들어간 바지와 치마부터 시도하다가 그다음엔 완전히 고무줄로 된 하의만 입게 되었다.


다행히 20주 차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입는 밴딩 치마도 허리 위쪽으로 약간 올려 입으면 소화 가능한 수준이었다. 허리 밴딩 치마 위에 오버사이즈 재킷이나 카디건을 입으면 감쪽같이 배가 나온 티도 나지 않고 예쁘게 다닐 수가 있었다.


 

 


하지만 20주 차가 넘어가면서 배가 더욱 눈에 띄게 나오기 시작하고, 치마 올려 입기(?)에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본격적으로 임부복을 검색하게 된다. (아니, 내가 검색하기도 전에 인스타 피드나 구글 광고에서 친절히 알려준다...)


그토록 구매하기를 거부했던 배 부분 특수 제작 임부복을 이제는 안 입을 수가 없다. 특히 치마 종류를 많이 입다 보니 안에 신을 스타킹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배가 조이지 않는 스타킹' 정도로 입다가, 그것도 살짝 버거워져 임부 스타킹을 사야만 하는 시기가 온다.



친절한 SNS 광고 덕분에 많은 임부복 사이트를 알게 되었지만 어쩐지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주문 버튼을 누르는 건 망설이게 된다. 과연 내가 이 옷들을 사면 뽕을 뽑을 수 있을까? 출산 이후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돈을 들여서 임부복을 사는 게 맞나?


결국 내가 다시 찾게 된 건 당근이다. 당근에 들어가니 '임부복은 어차피 한 철 입는 거니 새거 사지 말고 저렴하게 겟해서 입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꽤 많았다. 본인이 임신 기간 동안 잘 입었던 옷들을 일괄 판매하는 경우, 아직 임신 중이지만 인터넷 쇼핑 사이즈 선택 미스로 되파는 경우 등 사례도 다양했다.



임산부 아이템은 수요가 꾸준히 있지만 대상이 한정된 편이라 당근에 매물이 꽤 많았다. 그 덕에 가격 형성이 잘 되어있는 편이고 원하는 물건을 바로바로 살 수도 있었다. (참고로 임산부 단골 선물인 튼살크림은 대략 300개 정도 올라와 있다. 스크롤이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다. 나도 집에 튼살크림이 약 5세트 정도 있다...)


최근에는 당근 거래로 배가 쭉쭉 늘어나는 H라인 임부 스커트 두 벌과 임부 스타킹, 임부 레깅스 등을 반값 또는 1/3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전부 다 사실상 새 제품이라 매우 만족하는 중이다. 어차피 겨울이니 집에 있는 옷을 색상 조합만 달리 해서 돌려 입기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혹시 앞으로도 필요한 제품이 생기면 당근을 이용할 생각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임부복 새 상품을 주문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임신했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꾸며야 하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터다. 나 또한 과거 쁘띠 탈코(?) 시도까지 해 본 사람이라 억지 꾸밈노동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임신을 해도 삶은 계속 이어지고, 아침마다 출근하는 건 변함이 없으며, 어김없이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착장에만 조금 신경 써도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는 건 바꿀 수 없는 내 성향이다.


외양에 조금만 신경 쓰면 컨디션이 한결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사람으로서, 임신해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욕심이다. 비단 옷뿐만 아니라 헤어 또한 마찬가지다. 펌과 염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니 주기적으로 숱을 정리하는 등 맘에 드는 커트라도 해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기나긴 임산부 OOTD 고민의 결론은 남들 보기에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자기를 잘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와 자기 돌봄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중에도 스스로를 잘 챙기다 보면 삶에 즐거움과 활력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아닐까. 임신 출산을 해도 나를 위한 루틴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상으로 임산부 배지를 달고도 예쁘고 싶은 사람 1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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