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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육아의 기쁨과 슬픔

by 루이제
살면서 외로운 인간에게 이만큼 동질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고독한 사람들을 한참 만나고 나서야 나는 육아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고독임을 알았다.
김수민,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22p

아이를 키우는 일, 엄마가 되는 일이 행복하면서도 고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줄은 몰랐다. 한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나를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 아주 고독한 일이었다. 내가 속했던 커뮤니티부터 멀어져 아이와 둘만의 사투를 벌이는 것이므로.


자신이 우선이었던 시절,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1분 1초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육퇴'를 한 뒤에도 내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젖병 및 식기 설거지 하기, 이유식 만들기, 내일 먹을 것 냉장해동하기 등등 할일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육아는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할 만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외로움, 그리고 사회적 자신감 하락이라는 감정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물론 육아를 하면서도 자기 효능감을 느낄 일은 많다. 아이 수면교육에 성공했을 때, 루틴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을 때, 내가 만든 이유식을 아이가 맛있게 먹어줄 때 등등... 육아 또한 수많은 태스크를 순서에 맞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라고 했을 때 잘 해내는 순간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기분이 상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의 내 모습이 점점 잊혀갈 때, 내 전문 분야의 최근 동향을 챙겨보지 못해 뉴스에서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리기까지 할 때, 일하고 사람들과 떠들던 내 모습이 희미해질 때, 그만 아득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김수민 아나운서는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에서 육아와 동시에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다음과 같이 썼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중략) 나는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대충 사랑하면서 내 커리어를 온 마음이 아닌 반 마음만 가지고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었다. (160p)


책에서는 커리어를 쌓아가던 한 여성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며 경험하는 복합적 감정을 솔직하게 묘사했고, 육아라는 고독한 시간을 통과해 낸 사유가 돋보였다. 물론 그녀는 살면서 심각한 계급적 박탈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며, 책 곳곳에서 엘리트주의 등이 엿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SBS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합격했으며, 남편 직업은 검사다.)


여성, 그중에서도 '엄마'라는 정체성은 일원화할 수 없으며 교차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에 따라 엄마 되기(motherhood)의 과정을 매우 다양하게 경험하게 된다. 특히 요즘은 SNS에서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엄마들의 육아를 염탐하기 좋은 시대이기 때문에, '내 육아방식이 잘못되었나? 내가 우리 아이에게 못해주고 있나? 나만 육아 중에 이렇게 도태되고 있는 건가?'라며 비교를 하게 되기 십상이다. 진정으로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때문에 더욱 고독한 것이다.


육아휴직 중에는 수입이 줄어들게 되는데, 지출은 한없이 늘어나기만 한다. 아이 옷 신상이 나오면 끊임없이 사게 되고, 남들이 문화센터를 다닌다고 하니 나도 결제하게 된다. 뭐든 분수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을 슬로건으로 하는 육아의 세계에선 아주 화려한 마케팅 기술로 그걸 깜빡 잊게 만든다.


나도 육아휴직 초반에는 자기 계발을 해보려고 했었다. 아이가 잘 때 어학공부를 한다거나, 내 전공 분야의 논문을 읽는다거나... 호기롭게 외국어 학습교재도 사고 연구소 뉴스레터도 구독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공부는 개뿔, 꿈만 컸다. 아이 잘 때는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잠을 보충해야 했고, 지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OTT에서 도파민이 가득한 콘텐츠를 찾아봐야만 겨우겨우 살아졌다. 김수민 아나운서처럼 육아 중에 로스쿨 진학을 위한 공부를 하는 건 정말이지 나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나의 삶이 더욱 비참해졌나? 그건 아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이를 전인적인 존재로 키워내는 일은 실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커리어적 성장, 지적 도약을 추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을 살면서 처음으로 감각한다. 예전처럼 나의 어딘가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 않아도, 이대로 충분하다는 생각. 태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하는 한 생명체 앞에서 인간의 생애란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지를 곱씹는다. 아이를 갖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는 것만 같다.


고독이 과연 축복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매 순간이 꼭 축복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육아가 늘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외로움도 슬픔도 찾아온다. 이 과정이야말로 삶 그 자체이며, 나는 지금 생의 한가운데를 건너가는 중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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