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허니문 베이비 낳을 걸
임신을 결심한 뒤 후회가 되었던 건 의외로 '왜 더 빨리 임신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난생처음으로 피임을 중단한 뒤, 무슨 자신감인지 나는 바로 임신할 줄 알았다. 살면서 피임을 의식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피임만큼은 철저히 하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임신을 원하지 않는데 '덜컥' 생겼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임신을 원치 않는다=피임을 한다'라는 공식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임신을 원한다=피임을 하지 않는다=곧 임신을 한다'라는 결과식이 산출되는 줄로만 알았다.
피임을 끊었는데도 희한하게 6개월가량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보지 못하자 마음이 급해진 나는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난소 나이도 어렸고, 남편도 문제가 없었다. 우리의 진단명은 '원인불명의 난임'. 그 뒤로 과배란을 유도하는 약을 먹으며 자연임신 시도를 했지만 소식이 없자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인공수정 1차를 실패하고 나서 바로 시험관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시험관 1차에 임신을 했다. 만 32세 여름이었다.
결국 이렇게 시험관까지 해서 임신할 거면 차라리 허니문 베이비를 낳을 걸 그랬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몸도 마음도 가장 건강했고 임신을 하기에 가장 어리고 적합했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전언에 따르면 가임력은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결혼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름대로 신혼을 즐기고는 있었지만 가임력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현대인의 생애주기는 임신-출산-육아 등 인간의 생체주기와 지나치게 어긋나 버렸다. 한참 임신하기 좋은 나이에 우리는 대학 다니고 취업준비를 해야 하며 경제적 독립조차 어렵다. 아기 키우기 한창인 나이에 우리는 공부와 일, 자기 계발에 체력을 쏟느라 정신없다. 나 하나 건사하기가 어려운 세상에서 도대체 언제 임출육을 하냐는 말이다.
요즘은 40대를 보고 '둘째 보기 좋은 나이'라는 슬로건을 붙이는 세상이지만, 막상 겪어보니 30대 초중반인 나도 힘에 부쳤다. 고관절에 물이 차서(일과성 골다공증) 임신 전후 4개월을 걷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유리컵도 들기 어려울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던 손목은 아기가 6개월이 되어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출산 후엔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다.
어릴 때 술을 좋아해 폭음을 즐겼던 나. 운동은 그다지 안 좋아하는 나. 저질 체력에 멘털도 약한 나. 내 몸이 언젠가 임신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욜로족처럼 살았던 나. 임출육의 세계에서 뒤통수를 세게 맞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