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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오픈채팅방에 들어가다

불안감의 투영, 맘 모임

by 루이제

아기가 100일 무렵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몸도 어느 정도 회복했겠다, 같은 지역에 사는 뱀띠맘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친정엄마의 권유로 인한 것이었다. 엄마 아는 사람의 딸도 얼마 전 출산을 했는데 당근에서 뱀띠맘 모임을 찾아 잘 어울리고 있다면서, 너도 혼자 집에서 우울해하지 말고 나가서 다른 엄마들도 만나보라고.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산후우울증 회복에 있어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엄마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 처음에는 2개의 서로 다른 채팅방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1개로 추렸다.


오픈채팅방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OO(지역 이름) 뱀띠맘을 검색해서 들어간다. 그 채팅방의 룰에 맞게 아이 이름과 성별, 생일 등으로 구성된 닉네임으로 바꾼다. 챗방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육아 고민과 아기 키우는 이야기를 나눈다. 모임이 있을 때 일정이 맞으면 아기를 데리고 참석한다. 사람들과 친해진다. 정기적으로 교류를 한다.


단톡방에는 20명가량의 엄마들이 있었는데, 2개 중 한 채팅방은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전에 일찍이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오픈채팅방에 대단히 불편한 정치적인 얘기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에 해를 끼치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국민청원에 서명을 해달라는…. 그 순간 나는 이 톡방 사람들과 맞지 않겠구나 싶어 냉큼 퇴실해 버렸다. 그때 느꼈다. 엄마들 오픈채팅방엔 정말 랜덤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걸. '2025년에 뱀띠 아가를 출산한 엄마'라는 공통점 외에는 유사점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남게 된 1개의 톡방의 실제 '정모'에 참석해서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얼핏 보니 다들 모난 데 없이 좋은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몇 명과는 문화센터도 함께 등록하고, 서로의 집도 오가면서 아기들을 데리고 엄마들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모임은 일상의 활력이 되었고 텅 빈 하루를 채워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몇몇 엄마들과는 말을 놓고 친구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조심스러운 화두인 정치적인 얘기나 가치관에 관련된 이야기는 부러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아기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서로가 잘 어울려 놀 수 있는 나이도 아니므로, 맘 모임은 주로 엄마들의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이었다. 엄마만을 위해 모임을 하는 게 전혀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단점도 많았다. 나의 육아와 남의 육아를 비교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누구는 값비싼 아파트에 살며 화려한 육아템을 갖추고 있는데 나는 아니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친구처럼 서로를 대하고 있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관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잦았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어디나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말을 조금 세게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의 육아에 참견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안 사정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다른 아기의 발육에 대해 자꾸 선 넘는 발언을 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을 때면 내가 뭐 하러 일부러 이 모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싶기도 했다. 어차피 육아휴직 끝나면 보기도 힘든 사람들일 텐데, 그냥 모임 같은 거 나가지 말까 싶기도 했다. 나같이 예민한 영혼의 소유자는 함부로 사람들을 만나면 안 되는 걸 깜빡 잊고 말았던 것이다.


산후우울증 약을 받으러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이런 얘길 털어놓았더니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엄마들 모임이란 게 결국은 뭐겠어요, 엄마들 불안감의 투영이죠.


완전히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엄마 모임에 나가보면 독박육아 중인 엄마들의 비율이 꽤 높았다. 육아가 외롭고 힘들어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찾아 나온 사람들이었다. 육아가 처음인, 기댈 곳 없는 엄마들이 자신의 불안을 남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유는 남편의 워라밸이 좋지 않아서, 육아휴직은커녕 출산휴가마저 쓰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등등….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도 직장에서 배려받을 수 없는 현실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여기에는 젠더뿐만 아니라 계급적인 요인도 강하게 작용한다.


한 지역으로 묶인 커뮤니티여도 각자 사는 동네와 경제 상황은 천차만별이었다. 엄마들의 정체성은 결코 하나로 묶을 수 없고, 생각하는 방식도 사는 모양새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호칭이다)이나 돌봄 선생님을 고용하고 있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재정적 조건뿐 아니라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성향을 갖고 있는 등 선호 또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육아템 소비 패턴은 어쩐지 비슷하다는 게 킬포다. 최신 'VIB(Very Important Baby) 육아 트렌드'(한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현상)에 맞춰 각자의 구매력에 상관없이 육아용품 소비 수준은 상당히 상향평준화 되어 있다.


렇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는 과정에서 삐걱대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다. 중간에 단톡방을 이탈하는 사람들도 다수 나온다. 이들과 육아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정말 달래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을 때도 있는 반면, 어떨 때는 불안과 불안이 만나 극대화되기도 한다. 일례로 육아용품만 해도 그렇다. 남들이 '국민템'이라고 사는 것들을 나도 갖추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원리다. 따라서 내가 육아에서 뭔가 잘못하고 있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남들이 아기에게 해주는 만큼 나도 좋은 걸 해줘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마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럼 톡방을 나가면 되지 않나? 하지만 또 영영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예민맘의 딜레마다. 어떤 브랜드가 가성비가 좋은지, 이 시기엔 뭐가 필요한지 등등 맘카페에선 쉽게 얻을 수 없는 알짜배기 정보를 나누는 장점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맘 모임은 그렇게 나에겐 계속된 복병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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