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을 몸으로 겪으며 든 생각
어릴 때는 표준화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꾸밈노동, 타투 등 인간의 몸을 납작하지 않게 향유하는 방식을 좋아했고, 개성을 중시했다. 한때 비혼 비출산을 꿈꿨던 여성으로서 삶의 방식을 일원화하지 않는 세계관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큰 틀에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뜬금없이 인간 몸의 표준화된 작동원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추구해 온 사회적 가치의 정반대에 위치한 것이었다. 임출육을 몸으로 통과하며 인간의 신체란 얼마나 유사한지를 절감했다. 내 뱃속에서 아기를 키워낼 수 있다니. 내 가슴에서 모유가 나온다니. 실제로 아기가 몸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유두에서 젖이 흘러내리기 전까지는 스스로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제왕절개 출산의 순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진짜 '내 아기 소리가 맞나? 이거 가짜 아닌가? 아기를 어디서 빌려온 거 아닐까?'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간호사 선생님들이 얼굴 앞으로 데려온 아가는 태지가 잔뜩 묻은, 정말로 내 뱃속에서 꺼낸 아가가 맞았다.
제왕절개 출산 4일 차부터는 가슴이 땅땅 붓고 초유가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했다. 나는 몸매가 풍만한 스타일도 아니고,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선 그저 아무것도 안 나올 줄로만 알았다. 살면서 한 번도 가슴의 용도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 기능이 없을 것만 같았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모유는 5일 차부터 잘만 나왔다.
물론 이 과정을 겪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누군가는 임신 중 이슈를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모유수유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초유만 유축해서 먹이고 조리원에서 단유를 하고 나왔다. 고관절 통증으로 인해 직수(직접 젖을 물려 수유하는 것)가 어렵고 장기적으로 약물 복용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유를 하는 방법마저도 비슷했고 이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다른 엄마들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챗GPT보다 맘카페를 더 열심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생아의 몸은 더더욱 표준화되어 있었다. 응가 색깔만으로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고 개월수별로 뒤집기 되집기 앉기 서기 걷기 등 발육 상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스스로 온도 조절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가는 태열이 올라오고 습진이 생기는 등 바깥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맘카페에는 하루에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게시물이 수없이 올라왔다.
아무튼 내 몸은 그저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남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릴 때 술버릇이 안 좋아 취하면 어깨와 무릎과 발목을 수시로 부러뜨리고 다니던 나였다. 그러나 임신하고 나서는 내 몸이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공유중인 자원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다쳐서는 안 되었다. 육아는 연차를 쓸 수 없으니까 술을 먹고 꽐라가 되어 다음날 숙취로 인해 파업할 수도 없었다. 몸이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인스타그램에서 엄마들이 제일 하고 싶은 것 1위로 꼽힌 것이 '마음 놓고 아프기'라니.
이제 내 삶은 더 이상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책임져야 할 생명은 둘이다. 스스로가 너무도 중요했던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참 오래 걸렸다. 하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나는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