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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족이 임신을 결심하기까지

결혼하면 무조건 불륜할 것 같다던 그녀가

by 루이제
난 결혼하면 무조건 불륜 저지를 것 같아.


어린 날의 그녀는 당돌했다. 에너지가 넘쳤고 어떻게든 정석의 삶을 거부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선택지도 그만큼 무한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모르는 이와 키스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명과 데이트를 할 수도 있었다. 좋아하는 게 많았고 수많은 이들에게 매혹을 느꼈다. 사랑과 관능에 여러 번 빠지면 빠질수록 난 더 많은 걸 배울 텐데 뭐 하러 한 사람에게, 단 하나의 삶의 모델에 정착해?


배움과 모험에 대한 갈망도 깊었다. 철학과 문학을 사랑했고 필름카메라 들고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했다. 아름답고 지적인 20대 여성에게 안정과 희생이라는 단어는 국정교과서만큼이나 뻔하고 지루했다. 자신감이 흘러넘쳤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겁 없고 철없는 20대의 여성의 발걸음은 상상치 못한 곳까지도 갈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밥먹듯이 환승연애를 하고, 심지어 애인을 두고 두 사람과 바람을 피운 적도 있었다. (물론 이 사실에 대해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음주는 가장 큰 취미였고 멋 부리기 위해 담배도 피웠다.


그런 그녀가 정반대의 삶의 모양을 그리게 된 계기도 단순했다. 인간에게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계기는 20대 중반, 일본 대학원 유학이었다. 외롭고 비참하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 연민에 빠져있었다. 애인과의 관계도 파괴적으로 흘러갔다.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고 우울증에 걸렸다. 관능과 정열은 한시적이고 지속불가능한 가치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서재의 색채가 바뀌기 시작했다. 불태울 듯 강렬한 생을 살다 간 전혜린, 자기 파괴미를 과시한 프랑수아즈 사강, 결코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주인공 '니나'의 오롯한 생애를 동경한 루이제 린저의 시절은 저물고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능적인 삶>을 썼던 이서희 작가는 <구체적 사랑>에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어른의 관계를 말했고, 안정적인 애인과의 일상을 SNS에 포스팅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이슬아 작가도 소개팅 어플 무한 스와이핑의 시절을 건너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질 가능성을 모색하기를 어느 순간 멈추고 서로를 확정"하는 일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시인 이훤을 만나 결혼을 했다. 허무와 자멸의 아이콘이었던 허연 시인은 늦은 나이(무려 50살!)에 아이를 갖고 동시집을 냈다. 딸을 보고 있자면 이제는 그만 슬퍼해야 할 것 같다며 툭툭 털고 살아갔다.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의 그녀를 연민하고 때때로 그리워한다. 아직도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를 좋아하고 결혼과 육아라는 삶을 택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낀다. 여성들의 연대 같은 테마는 내게 언제 어느 때나 강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요컨대 대안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일상의 bgm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 또한 분명하게 안다.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삶을 원한다.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지키는 삶. 연소시키는 게 아니라 건축하는 삶. 소비하기보다 생산하는 삶. 혼자 신나게 날아다니기보다 여럿이 찬찬하게 걸어가는 삶.


그렇게 결혼을 했지만(이에 대해서는 '비혼주의자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브런치북 참조 https://brunch.co.kr/brunchbook/myweddingstory) 임신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임신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내겐 쉬운 일이었다.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편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아내에게 달려있다고 무려 처음 만난 날부터 강조했다. 원한다면 딩크로 평생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 2년 차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삶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해보고 싶어졌다. 돌아보니 나는 이제 또 다른 의미에서 자신감이 차올라 있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을 지나, 새 생명을 들이는 일에도 거리낄 이유가 없을 것만 같았다. 진실로 내가 원하는 건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그만큼 내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는 증명이었다.


시집 <불온한 검은 피>로 당대 비평계를 거세게 흔들었던 허연 시인은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 딸을 만난 뒤에 "많은 것들이 애틋해졌다"라고 말했다. 특히 자라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며. 자신에게 전적으로 모든 걸 맡긴 한 존재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그 문장이 너무 좋아서 해당 에피소드를 3번 정도 다시 들었다. 내가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도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나비 한 마리, 햇빛 한 모금이 새롭고 근사하던 어린 시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겪어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처음 겪을 수 있는 어린 생명이 있다는 것이, 무려 내 몸이 그러한 존재를 길러낼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동반자에 대한 확신도 중요하다. 나와 함께 이 모든 일을 겪어낼 수 있는 정도의 성숙도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믿음은 이미 충분했다. 우리는 '마음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결심했다. 감정과 행복을 외부에 아웃소싱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생식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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