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과 교류하기
아기가 4~5개월 무렵부터 같은 지역 뱀띠맘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육아 정보도 얻고, 사람들을 만나서 외로움도 달래고 좋았지만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엔 하나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우린 친구인가?
엄마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을 섣불리 친구라고 부르긴 애매해 보였다. 직업과 나이 등 표면적인 정보 외엔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깊이 들어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에서 자랐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하나도 모른 채로 사람과 어울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지금까지 만난 친구들은 같은 학교, 같은 직장, 같은 동아리 등으로 묶이면서 어떠한 하나의 공통점 정도는 갖고 있었다. 생활수준이 비슷하다든지, 학력이 유사하다든지, 취미나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든지 등등…. 그러나 엄마들 모임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 그 외에는 일체의 공감대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였다.
물론 육아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매우 큰 공통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슷한 월령대의 아기를 키우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아기 발달 관련 이야기나 이유식, 육아용품 등 육아의 세계는 넓고도 광활했다. 그러나 그 외에 엄마들 개개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아니, '나눌 수 없었다'라고 해야 할까.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잘 모르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맘 중에서도 특정 구, 특정 동, 특정 아파트까지 지정해서 교류하는 모임들도 있다. 이 경우 생활반경이나 경제적 수준이 비슷해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 모임라고 해도 매매나 전세냐에 따라서도 서로의 상황은 크게 다르고, 각 가정의 개별적인 속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꼭 재정적 상황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해야만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도 살아가는 모양새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같은 상사, 같은 오피스, 같은 복도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갖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경우에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서로 응원하고 위로해 주는 힘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있고, 독박육아 중에는 이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즉, 자기 연민의 싹을 잘라버리는 효과를 준다.
하지만 엄마들 모임에서는 엄마들이 소거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어떻게 보면 육아라는 것 자체가 엄마의 기존 정체성이 대거 지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 더 이상 '엄마'가 아닌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한 번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육아를 하며 자기를 어느 정도 잃어버린 엄마들끼리 만나면 각자의 취향이나 취미 같은 것들이 크게 사라져 버린 상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마들 사이의 관계는 육아라는 큰 산을 같이 넘는 동지, 전우 사이가 된다. 이 관계에서 친구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때론 친구보다 더 서로의 고충을 잘 알아주는 사이고, 각자의 힘듦을 어쩌면 가장 잘 이해하는 관계다. (특히 독박육아의 경우 이에 해당한다.)
엄마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우정, 전우애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떠한 시절인연은 내 인생에 큰 자국을 남기므로, 엄마들과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만은 않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