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 소소한 재미
육아휴직 중인 요즘 내 취미는 아기랑 도서관 가기이다. 쇼핑몰도 이제 지겹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얼까 찾다가 책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책이 많은 곳은 어디일까. 바로 도서관이었다. 많은 이들이 7개월 아기랑 조용한 도서관에 어떻게 가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아기랑 가기 좋은 곳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수유실이 있다. 공공기관은 수유실 설치가 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기와 외출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수유실을 찾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밥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가는 건 민폐이므로 언제나 수유실을 찾아 헤매는데, 대부분의 외출 장소는 수유실은커녕 아기의자조차 없는 곳이 많고, 기저귀갈이대가 설치된 화장실은 정말 정말 정말 드물다. 우리가 평소 다니는 건물, 식당, 카페 대부분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일례로 스타벅스에선 이유식이라도 먹일 수 있게 지침을 마련해 놓았지만(매장 내 외부음식 반입은 금지지만 딱 하나, 이유식만은 가능하다.) 전자레인지가 없기 때문에 또다시 데울 곳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몇 개 산 뒤에 (몰래) 이유식을 데우거나 10만 원가량 하는 온도조절 이유식 보관용기를 사서 들고 다녀야 한다. 이런 형편에, 도서관에 수유실이 있다는 사실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아, 나와 아기도 도서관을 정당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민이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둘째, 휴게실이 있다. 고로 잠시 책을 읽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아기가 시끄럽게 울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매사에 효율적으로 행동한다. 보통은 집에서부터 미리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선정해 두고, 도서관에 도착하면 책을 찾아 조금 훑어본다. 1장을 채 읽기 전에 아기는 지루해하며 슬슬 소리를 내려는 시동을 건다. 그래도 열람실의 분위기를 조금 더 즐기고 싶어 버티다가 결국 아기가 애앵~ 하고 침묵을 가르는 소리를 낸 다음에야 책을 급히 대출한다. 대출한 책을 휴게실에 갖고 와서 조금 읽다 집에 간다.
그렇게 빌려온 책은 책상에 쌓여있지만 막상 읽을 시간은 없다는 맹점이 있다.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에 아기와 놀아주면서 옆에서 책을 보려고 해도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반대로 아기가 자는 시간엔 이유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해야 하거나 잠을 보충해야 한다. 그렇게 상호대차까지 해서 빌린 책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때면 마음이 쓰리지만... 나는 다음 주에도 꿋꿋이 도서관에 갈 것이고 읽고 싶은 책을 빌려올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엄마로 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치기 일쑤다. 육아를 하면서 취미활동은 사치다. 그저 생존을 위한 운동 1가지를 겨우 주 2회 정도 할 수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소중한 육아휴직 기간이 이렇게 그냥 흘러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아 맞다, 나 책 읽는 거 좋아했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 시기가 끝나기 전에 읽고 싶었던 책이라도 많이 읽어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제 엄마들 모임도 슬슬 권태롭고, 무의미하게 사람 만나는 것도 지칠 무렵 독서를 다시 떠올린 건 참 다행이었다.
휴직 중에는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리기 마련이다. 평소 받던 월급의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용돈이 매달 들어올 때 한숨을 푹 쉬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사서 볼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회사를 다닐 때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립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공짜라는 사실이다. 매번 크레마클럽에 공짜로 올라와있는 책들 중에 그나마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읽기 바빴는데, 도서관에 가니 신간도 마음껏 빌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러니 어떻게 아기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