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육아

이토록 부당한 세상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

by 루이제
종종 나는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로 살아가는 이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지우, <그럼에도 육아> 中



가끔 육아를 하다 보면 생각한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이 시간에 나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수도 있고, 혼자 여행도 갈 수 있고, 수많은 모험을 할 수 있는데 상당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 하지만 결국 돌아와서 이제 나에게 눈앞의 이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암흑. 아이가 없는 삶의 이미지는 그렇다. 이 아이가 없는 세상에면 아무리 좋은 걸 먹어도, 멋진 여행지에 가도 하나도 즐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한편으론 이런 시절이 얼마나 짧을지 생각한다. 육아 외엔 해로운 바깥일을 집에 들일 필요가 없는 시절, 조금 남루하더라도 집안에서 아이와 둘이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시절 말이다. 내 인생에서 아주 잠깐 주어지는 이 보석 같은 시절을 나는 어떻게 보내고 있나.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음미하며 살고 있나. 매 순간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이를 깨우러 가고, 밥을 먹이고 똥을 싸면 씻겨주고, 하루가 끝날 즈음엔 쌓인 설거지에 한숨 쉬고, 끝이 없는 집안일에 압도당하면서 말이다.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다.
그냥 같이 누워서 떠오르는 대로
상상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는 좋아서 깔깔대며 더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 역시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이가 있어서 아내와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너무 쉽게 웃는다.
우리는 이 시절이 너무 짧다는 것을 매번 의식하고,
그래서 자주 슬퍼진다. (같은 책)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난 이 선택을 되돌릴 방법도 그럴 이유도 없다. 임신출산을 너무나 힘들게 겪었지만 다시 반복하래도 아마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내 곁의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왜 아이란 존재는 이렇게 절대적인 것이 되고야 마는 것일까? 절대적인 존재, 무조건적인 사랑, 비가역적인 선택. 그것은 아마 생명윤리의 관점에서는 나라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생명이기 때문일 것이고, 생물학과 모성의 관점에서는 '본능'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행위일 것이다.


요즘 세대의 '털끝만치도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은 육아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아이와 있으면 나의 모든 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육아란 수지타산이 1도 맞지 않은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간혹 가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순간이 모여 행복이라는 이익을 기어코 만들어낸다. 아이가 나와 눈 마주치면 웃어줄 때, 누워만 있던 아기가 앉고 기기 시작할 때, 분유만 먹던 아기가 이제는 제법 입자감이 있는 음식을 오물오물 씹어먹을 때 등등... 내 몸이 이 아이를 태어나게 했다고?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이의 탄생은 많은 부부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듯하다.
그 이전까지 모든 선택은 번복할 수 있었고,
도망치자면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이가 눈앞에 태어나는 순간,
부모는 이제 배수의 진이 없어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선택한 이 삶, 이 사람과 함께
이 아이랑 살아가고자 했던 그 선택은
결코 틀려서는 안 되는 무엇이 된다.
아이의 탄생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책)



<그럼에도 육아>에서 정지우는 "부모의 자리란, 사라질 것이 예정된, 그럼에도 여기 있는 참 기묘한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어떠한 일에서도 삶의 이런 일시성 혹은 임시성을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썼다. 작가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아빠로서 느낀 것들을 에세이에 기록했다. 육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토록 명징하게 붙잡은 문장들을 이전까지 본 적이 없다.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인데, 이런 글들을 읽으면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지금 내가 겪는 이 시간을 한번 더 곱씹어보게 되고, 허투루 날려 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엔 부당한 일이 차고 넘치고 내 삶에도 부정의한 일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육아를 택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그저 내 하루가, 어떠한 순간들이 말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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