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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May 18. 2024

행복의 씨앗

긴장되는 맘으로 난임 치료병원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가볍지만 않았다. 기쁜 소식을 안고 와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긴장을 잔뜩 한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 마음이 떨려온다. 아침 일찍 분주하게 준비하고 물도 적게 마셨는데도 소변이 마렵다. 화장실은 내가 가고 싶은데 아내에게 물어본다.

“여보, 우리 잠깐 휴게소 들렀다가 갈까?”

“응, 그래”

마음을 알아준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휴게소에서 잠깐 시간을 가지고 다시 출발하였다. 어느덧 파란 지붕의 요금소가 보인다. 내비게이션 속에서 쉴 새 없이 울어대는 그녀는 도착 10분을 알린다. 10분만 지나면 조용해지겠지. 다행이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이제껏 잘 왔다. 병원이 코앞에 보이자 다시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낯설고 초조한 기분 탓에 우리 둘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설 순 없기에 서로의 눈을 확인 한 채 손을 붙잡고 병원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섰다.

병원의 안내에 따라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려서인지 병원 내부와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보, 여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 철없이 내가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쉿, 좀 얌전히 있어!”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생각한 아내는 경거망동한 나의 행동을 나무랐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신기한 듯 내 방식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동지들이 많네.” 하며 힘을 얻고 싶었다.

진료실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달랐다. 고개를 떨구며 낙담한 표정으로 나오는 예비 산모, 웃음꽃이 활짝 핀 예비 산모, 눈물을 보이며 나오는 젊은 예비 산모들을 보며 남 일 같지 않았다. 우리도 저 흰 문을 열고 나올 때 어떤 표정으로 나올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설득하고 손을 붙잡고 왔지만 떨리는 순간이다. 직접 병원을 수소문하여 알아보긴 했지만 남편을 믿은 만큼 실망감을 주긴 싫었다.

그동안 아내는 임신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어 있기에 너무나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희망이라는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 눈앞에 보이는 많은 산모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아내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기적인 남편이 되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노력한 다음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경우에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런 생각을 가진 남편이 아주 미웠을까?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해야 해?”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 수도 있잖아?”

사실 나에게 묻지도 않은 질문들이 들이닥칠까 봐 내가 더 긴장하고 있다. 오늘 제발 좋은 기분으로 돌아가게 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곧 우리 차례가 되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검사결과를 이야기를 하시며 우리 부부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

“예비 산모도 건강하고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남편도 아주 건강하네요.”

“함께 노력해 봅시다. 남편분이 곁에서 잘 도와주셔야 해요”

이 말에 천군만마를 얻은 전쟁터의 장수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단 한 마리의 말이라도 나에게는 행복의 큰 씨앗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가치와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작은 것의 소중함, 작은 행복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행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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