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벨이 울린다. 징~~ 징~~
아내에게 온 전화다. 아내는 평상시에 내가 출근하면 일에 방해될까 봐 전화를 하지 않는 편이다. 급한 일이 아니면 메시지를 남긴다. 내가 메시지의 ‘1’을 1시간 이내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면 가끔 아내의 전화벨이 울릴 때도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눈치라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빠, 날 따라가 줄 수 있어?”
“어디?”
궁금한 말투로 짧게 물어봤다.
“좋은 일이야? 나쁜 일이야?” 하고 한술 더 떠 재차 확인한다.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돼.”
“알았어.”
“2시까지 향원빌딩 1층에서 봐”
그렇게 약속하고 사무실에서 나와 잠시 외출을 한다. 사무실 밖의 햇살은 눈부시다. 오늘 같은 날 반차라고 쓰고 아내와 드라이브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순간 놀라면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산부인과 건물이었다. 서둘러 건물 안의 아내를 찾기 시작했다. 아내의 뒷모습 이내 들어왔다.
“여보”
“응, 빨리 왔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한마디 건넨다.
“여보 왜 말 안 했어?”
“나도 걱정이 많이 되고 저 번처럼 실망할까 봐 그랬어.”
나의 산부인과 방문은 처음이지만 아내의 임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결혼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흔쾌히 지지를 하며 학원을 등록해 주며 응원을 하였다. 한 달쯤 지나자,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학원에서 이유 없이 피곤함을 느꼈고 책상에서 졸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고 말을 건넸다.
“손 놓았던 공부를 하니 그럴 수도 있어.” 익숙하지 않은 책을 접하니 힘든 것이라고 토닥였다. 아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잠도 많이 자고 생리적인 리듬이 평상시와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계속되는 증상에 아내가 산부인과에 내원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혹시 임신일까?’
대기 순번을 기다리고 간호사 선생님의 호명에 긴장된 기색으로 진찰실로 들어간다. 진료실에서 간단한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아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아내. 난 그 시간에 영문도 모른 채 회사에서 열심히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직장상사와 잡담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간호사가 다시 이름을 크게 부른다. 멍 때리고 있던 아내는 ‘네~’ 하며 잔뜩 긴장하며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고 한다.
“임신증상 같은데 별다른 증상은 없으셨나요?”
“여태 모르셨어요.”
“네, 임신은 생각 못했고, 하혈을 조금 하여 놀라 오게 되었습니다.”
“·······”
의사는 아내의 대답에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검사 결과를 이야기해 주셨다.
“소변검사 결과와 높은 호르몬 수치를 봤을 때 임신이 맞습니다.”
“초음파 검사로는 아기집이 보이지 않네요.”
“이런 말씀드리기에 죄송스럽지만 유산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이라······. 아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어깨가 무겁게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방에 주저앉고 말았다. 며칠 나에게 말을 못 하다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여보, 유산이래.”
그때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아내의 눈을 보며 나도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푹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마디였다.
“수고했어.”
아내는 원하던 자격증 공부는 중단하고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서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왔던 기억이 난다. 미역국을 일주일 정도 끓여 주었다. 맛이 없더라도 잘 먹어 주었기에 그저 고마웠다.
오늘도 그날의 기억 때문에 남편인 나와 동행을 하자고 했던 이유다. 아내와 간호사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초조해했지만, 철없는 남편은 잔뜩 기대하고 있는지 덜 떠 있었다. 간호사의 호명에 아내는 숙연해지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진료실 문이 금방 닫히고 10분, 20분이 흘러도 아내가 나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방긋 웃으면서 나오는 게 맞지만 뭔가 잘못된 분위기다. 걱정스럽게 아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진료실 문이 열리더니 아내의 보호자를 찾는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평일에 따라온 남편은 나 밖에 안 보였다. 간호사의 부름에 대답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긴장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콩알 같은 가슴을 달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결과를 말해주는 의사 앞에서는 항상 식은땀이 흐른다.
“보호자님 잘 들으세요. 이번에도 안 좋은 상황이네요. 큰 병원으로 가셔서 항암 주사 치료를 해야 합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항암 주사는 왜 맞는 것이며, 큰 병원은 왜 가야 하는지? 이내 자세히 설명을 듣고 나서야 심각함을 느꼈다. 앞 유산은 ‘자연유산’이었다면 이번 경우는 ‘화학적 유산’을 해야 하는 경우다. ‘자궁 외 임신’으로 아기집이 안 보였다. 임신 호르몬 수치는 높으나 아기집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 문제가 된다. 수정란이 자궁 안으로 이동해서 바르게 착상되어야 하지만 자궁 바깥이나 나팔관에 자리를 잡은 경우다. 자기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좁은 길목에서 아기가 자라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산모와 아이에게 모두 위험하기에 강제로 유산을 시키는 방법을 의사는 선택한 것이다. 나팔관을 절제 하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일차적인 약물치료로 항암제 같은 독한 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네산부인과보다는 수술과 의료지원이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부부는 상황을 이해하고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약물치료로 가능하다고 했다. 독한 약이기에 다음 날은 해독하고 번갈아 가면서 여러 번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병실에서 창백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