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유효기한이 있다고 한다. 보통 3년 주기로 찾아온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또한 그 주기를 피해 가지는 못한 것 같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가고 아기를 낳은 지 이제 1년이 되었다. 신혼 1년, 임신 1년, 육아 1년을 하고 나니 달달하고 몽글몽글하던 캐러멜 마끼아또 같던 감정이 조금씩 달콤 씁쓸한 카페라테로 변하더니 지금은 옅은 아메리카노로 변해가는 중이다.
사실 남편은 유달리 나를 잘 챙기고 사랑해주는 애처가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 표현도 잘하고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기를 낳자 모든 것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기가 커갈수록 레벨이 올라가는 육아는 심신을 지치게 했고 거기에 사랑의 유통기한이라고 하는 마의 3년까지 겹쳐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부부는 점점 사랑 표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육아로 인한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내 병을 조금씩 악화시키고 있었다.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뇌전증 증상들은 나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많은 걱정을 끼쳤다.
어느 날 작은 증상으로 시작된 발작이 대발작으로 이어져 과호흡과 몸이 뻣뻣해지는 경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아기랑 놀던 남편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아무런 영문을 모르는 내 아기는 멀뚱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리 혼자서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몸을 추스리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결국 아기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것도 슬펐지만 예전 하고는 다른 남편의 모습도 나를 슬프게 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남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병이 오래 지속되면 병이 난 사람도 그 모습을 보는 사람도 조금씩은 무뎌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사랑하는 마음마저도 식어버리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카노로 변해가는 우리의 마음이 샷 추가를 한 에스프레소가 되기 전에 감정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감정이 무뎌질 때 회복을 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래에는 실제로 내가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보았다.
1. 분리의 공간을 만들기
부부는 일심동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항상 붙어있어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지고 볶더라도 같이 살다 보면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되어 결국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에 반박을 하고 싶다. 진정으로 하나가 되고 싶다면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집안에서 개인적인 공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자신이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사는 집은 복층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면 나는 이곳으로 와서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남편의 경우에는 안방에 놓인 자신의 탁자 앞에 앉아서 쉼을 가지기도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할 때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2. 의식적으로 표현을 하기
마음에 담아두는 사랑은 그것을 표현해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사랑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신혼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은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마음속 깊이 사랑을 간직해 버린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표현을 자주해 보자. 의식적으로 하는 표현이지만 그것의 효과는 아주 크다. 그리고 반복적인 표현은 서로의 마음을 회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당신의 사랑이 완전히 식기 전에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불씨를 댕겨보는 것은 어떨지?
3.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기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비밀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굳이 오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마저 공유를 하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연인이든 부부이든 모든 것을 오픈하는 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허물마저도 다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은 콩깍지가 덮인 상태였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지만 문제는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 되겠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던 일들이 일순간에 빡치는 일로 다가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오픈할 필요가 없는 일까지 오픈해서 상황을 안 좋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 적절하게 가려서 공유를 하는 지혜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면 감정이 무뎌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