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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Aug 20. 2022

그러니 걱정 마세요.

우리가 아픔을 겪는 이유

10년 전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때였다. 그때 당시 정말로 말 안 듣기로 유명한 민수라는 학생이 있었다.

민수는 말도 잘 안 듣지만 공부에는 아예 소질이 없어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까먹는 신기한 능력을 소유한 아이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민수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공부에 관해선 딱히 바라는 것이 없었고 아이도 흥미가 없는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도 없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과외하는 학생의 학부모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자녀 3명을 나에게 맡긴 학부모라 마치 친언니처럼 서로의 속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선생님, 그 선생님 병 그거, 민수도 그 병이라는 것 같던데.."

"진짜요? 언제부터요? 민수가 지금 몇 살이지?"

"지금 고1인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갑자기 증상이 나타났다데... 학교에서도 기절을 하고.."

"아이고 많이 심한가 보네.. 민수 어머님이 많이 속상하시겠네요."

"당연히 그렇지. 민수가 엄청 귀한 자식이잖아. 결혼하고 10년 만에 생긴 아들.."

"그러게.. 언제 한번 제가 전화라도 드려야겠네요."

민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민수가 뇌전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민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수 어머니 잘 지내시죠?"

"네, 그런데 누구세요?"

"어머니 저예요. 영어 선생님."

"아. 선생님 안 그래도 소식 들었어요. 시집가셨다고 잘 지내시죠?"

"네, 저야 잘 지내죠. 사실은 민수 이야기 듣고 전화드렸어요."

"그래, 선생님. 저도 선생님 이야기 들었습니다."

"민수는 어때요?"

"네, 병원에서 주는 약 먹고 하는데 한 번씩 발작은 하고.. "

"좀 더 큰 병원을 가보는 건 어때요? 약을 바꿔봐도 좋을 텐데.."

나는 나의 경험담을 나누고 어머니에게 위로를 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민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말씀 듣고 서울 다녀왔어요. 갈까 말까 하다가 다녀왔는데 진작 갈걸 했어요."

"그렇죠. 잘 다녀오셨어요."

"약 바꾸고 이틀 만에 민수가 손톱을 물어뜯지 않더라고요. 손끝마다 살이 벗겨 질정도로 심했거든요."

"정말 다행이에요.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니에요. 제가 뭘요. 앞으로 저도 민수도 약 잘 먹고 하면 나을 수도 있을 거니깐 걱정하지 마시고요."

"네. 선생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나는 민수만큼 증상이 심각하지도 않지만 굳이 내가 덜 아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자신과 똑같은 상황이나 혹은 자신보다 더 나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며 위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수와 민수 어머니가 위로를 받았으니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픔을 겪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한 것.



나는 종종 나의 삶에 대해 이런 의문이 들곤 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겪고 있는 또는 여러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폐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평생 동안 담배를 하루에 반갑이상 씩 피워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담배라는 이유가 폐암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거 같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오랫동안 진지한 마음으로 만남을 유지하던 사람이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결혼 준비와 함께 시작된 크고 작은 의견 차이로 끝내 이별을 한다. 이런 경우는 뜻밖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들의 이별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집 문제나 혼수 문제 시댁과 친정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이유가 되어 사랑마저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평생 직장을 다니다가 은퇴를 한 가장이 있다. 그는 이제 매달 나오는 퇴직연금을 받으며 남은 인생을 즐길 것이다. 그런데 웬걸 100세 시대에 60살에 경제활동을 멈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매달 나오는 연금을 포기하고 퇴직금을 정산하여 나름 믿을만한 정보로 주식을 산다. 매달 나오는 연금의 수익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무렵, 이런, 주식의 급락세로 퇴직금이 반토막이 나버렸다.  이런 경우는 잘못된 판단으로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큰 아픔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와 희망이 될 수가 있고 때로는 깨달음을 통하여 성숙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이 상황이 허락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그러한 고찰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의 아픔이 당신들이 겪는 아픔에 위로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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