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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Mar 30. 2023

도심 속의 무인도

사라져 가는 내 이름

  갑자기 공허함의 물결이 밀려온다. 누구라도 만나서 커피나 한잔해야겠다. '누가 좋을까?' 바쁘게 머리를 굴려보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다. 한 친구는 한창 근무 중이고, 다른 친구는 일찍 본 손주 때문에 바쁘다. 업무를 핑계 삼아 자주 만났던 지인은 어떨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럴 때 친정은 고사하고 시가라도 좋으련만, 아무도 없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커피 한 잔 마실 사람이 없다니 지독히 외롭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낯선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만하면 제법 뿌리가 내렸을 법도 한데 아직도 난 이방인이다. 씨족사회 같은 작은 도시라 그런지, 내 성격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아무리 둘러봐도 하릴없이, 약속 없이 갈 데가 없다. 마치, 무인도에 갇혀버린 것처럼…


  20년 전 그때도 그랬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세월의 두께만큼 아는 사람이 늘었고 커뮤니티도 여러 개 생겼다는 것이다.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일정한 거리와 일로 만난 사람들이다 보니 '그냥'이란 옷보단 '예의'란 옷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남편 흉을 같이 보며 목적 없는 수다를 떨 때도 한 줌의 긴장이란 걸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내 속을 다 꺼내 보여도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고 맘 편한 진짜 ‘찐’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바쁜 직장 생활로 잊고 있던 그 섬이 다시 동동 떠올랐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계셨다. 굴러가다 멈추는 곳이 왜 내 자리냐며 격렬하게 반항했었는데, 결국 뒤웅박이 되었다. 그렇게, 남편을 따라 낯선 이곳까지 왔다. 아니, 나름대로 설계도 하고 준비란 걸 하긴 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정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당시 유행하던 속셈학원에 취업을 한 것이다. 교사자격증도 있고 가르치는 재능도 조금 있어 학원을 차릴 생각이었다. 첫아이를 낳은 후,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이 날아갔다.


  

  궤도 수정이 필요했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은 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취업을 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잘 되어있지 않은 때라 아이들의 자기 앞가림이 절실했다. 두 아이를 키워 놓고 '지금이다'하는 찰나에 덜컥 셋째가 생겼다. 계획표에 없는 아이의 등장에 하늘이 노래지며 화가 났다.    

'씨발, 이게 뭐야'  

더 이상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아 유산을 하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던 길에 귀한 생명을 함부로 한다는 죄책감에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원치 않은 애국자가 되어 몇 년의 세월을 더 보냈다.


  이젠 궤도를 수정할 힘도,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힘도 없이 빈 껍데기만 남았다. 뜨겁게 꿈틀대던 꿈과 열정이 한없이 쪼그라드는 게 보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정착할 땅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때부터 무인도 순례를 시작한 것 같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으로 떠나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슈퍼 주인, 막둥이 친구 할머니, 가끔 만나는 교회 성도가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전부이던 때이다. 그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다 돌아서면 그 시간만큼 불안과 초조가 쌓였다. 내 언어로 나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언어로 아이의 세상을 바라보니 정작, 나는 한없이 작아져만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족밖에 모르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자기들의 섬에 정착하라고 무던히도 손짓했다. 그러나, 그 또한 잠시 머물다가는 바람 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다정한 남편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들이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나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도 내가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내 이름이 사라졌다는 게 억울하고 슬펐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가 공식 명칭이 되고 나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게 서글펐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부터 두려움과 싸워야 했고 한없이 커지고 있는 열등감에 무릎 꿇어야 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함으로 바뀌었다. 아름다움으로 채워도 부족할 삼십 대 청춘이 그렇게 저무는 게 안타까웠다.


  새장 안의 새가 나는 법을 서서히 잊어가듯, 절망의 늪으로 천천히 침몰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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