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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May 26. 2023

12년 전업주부에서 센터장까지 10년의 여정

차선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2015년 3월 6일 3평짜리 방의 주인이 되었다.

2010년 1월 1일에 업무 담당 직원으로 입사해, 5년 3개월 만에 여성새로일하기센터장이 된 것이다. 무인도에 갇혀 쩔쩔매던 200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도 불과 10년 만의 일이니 운도 이런 대운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작은 지역사회이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일을 했다지만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만은 확실하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와 경력단절 여성들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현재 전국에 160여 개 정도가 있는데, 내가 근무했던 센터는 산업단지 인력난 해소와 경력단절 여성들의 취업지원을 위해 2008년 10월, 5번째로 개소한 곳이다. 그러나, 산업단지라고 하기조차 민망한 '열악함'에 주무장관이 깜짝 놀라셨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작은 소도시다. 


  그러니, 아무리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도 문전 박대를 당하기 일쑤고, 이상한 상인 취급을 당하는 일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끔찍하게 싫었던 건 전단지를 들고 홍보를 나가는 일이었다. 간신히 건네주는 손길을 뿌리치거나, 받자마자 버려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무조건 받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다.


  거기에 더해, 워킹맘으로 넘어야 할  안타까움과 억울함의 고비들은 또 어떠했던가? 처음 1년 정도는 집 근처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막내아들 병원도 데려가고, 저녁도 먹이면서 그럭저럭 보냈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고, 퇴근 후 약속이 많다 보니 담배 연기 자욱한 식당에서 기름진 고기를 먹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식당에서의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아무리 만류해도 혼자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는 남편과 먹는 걸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미안하고 아픈 기억이다. 거기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을 위로는 못해 줄망정 거나해진 목소리로 '당장 그만두라'라고 후벼 팔 때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은 어느 날엔가 119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다.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일가친척은커녕 친구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직장 생활을 하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3~40분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은 당연한 직장예절이고, 집에 일이 생겨 연차라도 낼라치면 ‘여자라서 책임감이 없다’는 말을 부지기수로 들어야 했다. 보상과 칭찬은커녕 똑같은 일을 하고도 여직원들에게 돌아오는 건 “남자 직원들의 고생 위에 숟가락 얻고 편하게 일한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뇌를 해부해 보고 싶다”라는 성차별적 융단 폭격과 비하였다. 


   그렇게, 워킹맘의 설움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알게 되었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새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그토록 바라던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은 물론 ‘유리천장’의 억울함이 없는 꿈의 둥지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던 때였는데,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막내아들을 편하게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방향 키를 돌렸다. 하지만, 현실은 '오늘은 오늘 퇴근합시다.'가 출근 인사였을 정도로 가정은 없고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 동동거려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동안의 힘듦은 애교 수준일 정도로 지옥의 서막이 열렸다.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내 가정은 철저히 버려야 하는 시간을 2-3년 정도 보낸 것 같다. 흘러가는 세월의 두께만큼 센터도 안정되고 잦은 이직으로 골머리를 앓던 직원들도 자리를 잡아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좌우명이 그때 생겼다. 절대 못할 것 같던 일들이 숨 가쁜 고비를 넘어 편안하게 해결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시간이 약이다.'라는 매집도 생겼다. 


© landscapeplaces, 출처 Unsplash


  그렇잖아도 약한 체력과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현실을 넘어서면서 '포기'를 선언하고 싶은 때도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센터가 없어지지 않는 한 누군가는 계속해서 해나갈 일을 하지 못하는 포기자가 되는 게 싫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몇 m 앞에 있는 핸드폰을 가지러 갈 힘이 없고, “엄마는 내일도 아플 거잖아”라는 아들의 서러움에 무릎 꿇어야 했지만 무너지고 싶진 않았다.


  바보 같지만 내가 건강해야 가정도 행복하고 직장 생활도 잘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모든 가족의 기도 제목이 '나의 건강'이 될 정도로 약해져 있는 내가 한심했다. 체력관리가 절실했다. 벼락치듯 울리는 천둥소리에 이끌려 '311055(매일 30분 스트레칭과 만보 걷기로 10년간 55사이즈 유지하기)'란 건강 키워드를 만들고 운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건강도 회복하고 나에게 찾아온 행운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내 '인생의 황금키'이자 마법 주문인 '311055'을 외치며 힘차게 걷는 중이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걷고 있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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