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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Apr 06. 2023

다시 찾은 내 이름 세 글자

굿바이 무인도, 웰컴 투 내 이름


  산 넘어 산이다. 교육을 신청하려면 고용센터에 구직 등록이란 걸 하고 ‘구직필증’을 받아야 한단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또다시 달아올랐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결했다. 그렇게 간단한 것 하나도 내 힘으로 처리하지 못한 바보 같음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다음날. 힘들게 받은 ‘구직필증’을 들고 ‘OO 직업전문학교’로 갔다. 쭈뼛거리며 신청서를 쓰고 나니 면접을 본단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교육 수료 후 취업을 알선해 주면 하실 건가요? "                                                                     

‘오, 마이 갓!’ 

가장 두려운 단어가 '취업'인데 그걸 물어본다. 한 가닥 남아있던 희망의 끈마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나이에 취업이 되겠어? 말이 되는 소릴 물어봐야지.' 

하지만, 끝까지 포기할 수 없어,                                                                                   

 "네, 시켜주시면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툭’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력서라도 내 볼 수 있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을 텐데,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들 키우느라 보낸 12년의 세월이 왜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니라 족쇄인지 큰소리로 따져보고 싶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이곳에 와서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리도록 파랗다. 꼭, 내 가슴의 상처 때문에 생긴 멍인 것만 같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허수아비도 나 같은 마음일까? 분하고 억울해서 며칠을 앓아 누었다. 그 아픔이 서서히 잊혀 가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OO 직업전문학교입니다. 지원하신 전산세무회계사무원 양성과정에 합격하셨습니다."       

"네? 진짜요? 진짜 제가 합격이라고요?" 뛸 듯이 기뻤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와 같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네, 3월 2일 9시까지 학교로 나오시면 됩니다."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고,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한테 하려던 전화를 나한테 잘못한 건 아니겠지?'                                                 

믿기지 않는 마음에 '설마'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신나고 행복한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고 드디어, 개강하는 날이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랴 나도 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쁜 틈을 비집고, 또다시 갈등이 올라온다. 괜한 짐 덩어리가 되는 건 아닌지, 애나 잘 키우지 뭐 하러 나왔냐고 손가락질이나 받는 건 아닌지 소란스러웠다. 


  쭈뼛쭈뼛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 또래가 한두 명쯤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잠시 후, 담임이란 분이 들어와 출석을 불렀다.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진짜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제부터 6개월간 나는 학생이다. 조금 전까지 어색하고 불편했던 감정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기대와 호기심의 세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이름’ 세 글자가 다시 돌아왔다. 마음으로 벅찬 눈물이 흐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가 볼까 얼른 주위도 돌아봤다. 촌스럽다고 때로는 구박도 하고, 예쁜 이름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름의 탄생 비화 덕에 더 싫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나로 불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행복하다.

 

  내가 태어나던 해, 한 미인대회에서 '표경옥(表敬玉)'이란 사람이 우승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까지 똑같은 이름을 가지게 됐다. 작은 아버지가 그 사람처럼 예쁜 사람이 되라고 지었다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세련되지 않은 이름을 자랑할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그때 우승을 해서 촌스러운 이름을 갖게 했냐고 애먼 사람 탓도 하고, 몇 번인 가는 개명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가슴에 묻고 살아보니 내 존재를 세워주는 그 하나로 충분히 감사한 이름이었다.

 

더 이상 이름 탓하지 말고 얼른 'OO 엄마'의 배에서 내려, ‘나의 배’를 운행하며 맘껏 불러주고 싶다.

'최경옥호'의 닻을 올리고 거친 바다를 향해 출발이다.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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