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회와 금상
"경옥 님 수업 끝난 후에 잠깐 남아 주세요."
수료가 한 달 조금 더 남은 어느 날이었다. '반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업 일수도 80% 전이라 취업알선을 할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지?' 수업 시간 내내 신경이 쓰여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업 후, 담임은 다짜고짜 "다음 달에 '전국 세무회계·기업회계 경진대회'가 있는데 거기 한번 나갑시다."라고 한다. 엥~~ 이건 갑자기 뭔 시추에이션? 지금 어디서 몰래카메라 찍고 있는 거 아니지? 황당하다 못해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절대 실력이 안된다, 말도 안 된다.'라며 아무리 거절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전국 대회가 동네 애들 장난도 아닌데 무슨 근자감인지 모르겠다. 실력이 충분하다며 4명이 팀을 이뤄 대학·일반부 개인전과 단체전을 나가란다. ‘그럼, 대학생들과 함께 시험을 본다는 얘기?’, 더더욱 안될 말이었다. 어쭙잖은 실력을 인정해 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것 같다.
며칠 동안 못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포기를 안 하신다. 아니 학교장님까지 나서서 꼭 나가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어쩔 수 없이 대회 접수를 했다. 망신이나 당하고 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나의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기왕이면 잘해서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대회 날 아침이 밝았다.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 같고, 심장이 나냈다. 얼마 만에 나와 학교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대회인지 모른다. 설레고 흥분되면서도 내 안의 못난 아이가 튀어나와 못살게 굴었다.
'12년을 쉰 전업주부가 몇 개월 공부한 걸로 대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나도 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걸...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학교에선 무조건 상을 받을 거라며, 시상식까지 참석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난 알량한 실력으로 손도 못 대는 건 아닌지 속 타 죽겠는데, 금빛 청사진을 그리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낯선 교정과, 많은 사람들로 기가 죽어 어떻게 대회를 치러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흘끗 둘러본 주위엔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잖아도 작은 가슴이 더 쪼그라들고, 눈치가 보였다. 어찌어찌 다 풀고 나니 아리송했다. 잘 푼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상에 대한 욕심을 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현실을 자각하는 목소리가 일침을 놓았다. '대회를 나올 정도면 실력들이 대단할 텐데 그 정도 실력으로 되겠어? 괜히 헛물켜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해!' 반박할 수 없는 쓴소리에 바로 꽁지를 내렸다.
왠지 서운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 달리 상을 받고 싶은 욕심이 또 슬그머니 올라왔나 보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은 오락가락하는데 하릴없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자니 아쉽고, 기다리자니 오버하는 것 같아 고민이었다. 함께 간 사람들과 상의 끝에 기다리기로 했다. 모두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상을 못 타면 창피해서 어떡하지?',
'다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괜히 늦게 가는 거 아니야. 그럼 미안해서 또 어쩌지?,
'무엇보다, 엄마가 대회 나간다고 신나 하던 애들이 많이 실망할 텐데... ',
'잔뜩 기대하고 있는 선생님들께 죄송해서 내일 학교는 또 어떻게 가고...'
오만가지 생각과 걱정으로 시끄럽고 부산스러웠다.
드디어, 긴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시상식 시간이 되었다. 기대와 떨림과 창피함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공존했다. 대상이나 금상은 언감생심이고 은상이나 동상이라도 받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란 생각이 들면서도 허탈했다. 이제 남은 건 금상과 대상뿐...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들을 제치고 상을 탈것 같지 않았다. 낮에 했던 온갖 걱정들이 현실의 파노라마가 될 것 같아 먹먹해졌다.
온갖 상념에 빠져있는데 '금상, OO 직업전문학교 최경옥' 하고 내 이름이 불렸다. 잘못 들었나 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옆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세상에, 금상이란다. 너무 기뻐 창피한 줄도 모르고 깡충깡충 춤을 추었다. 그동안의 설움이 한방에 날아가는 것 같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이 넘실댔다.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한 우리는 단체전에서도 금상을 받았다. 아줌마들의 대반란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 그렇게 찬란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마치, 우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깔아 놓은 카펫 같았다.
기쁨도 잠시, 집에 내려가야 하는데 기차표가 없다. 언제 끝날지 몰라 예매를 못했는데 사달이 난 것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천근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무궁화호 입석을 타야 한다. 2시간을 꼬박 서서 내려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런데, 신나는 얘기 보따리가 가져다준 새 힘 덕인지, 터질 듯 아픈 다리조차 즐겁고 행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에 홀린 것 같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손에 들려있는 상장이 아무리 진짜라고 얘기를 해줘도 일장춘몽은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흥분과 기쁨으로 들떠 있는 틈을 비집고, 저 밑에서부터 소리 하나가 빠르게 달려왔다. 처음엔 아주 작은 공기의 흐름 같았는데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와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나 아직 멀쩡하다고.' 누가 들을 새라 얼른 기차소리에 묻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동안 눌려있던 자의식의 빗장이 풀리며 토해낸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보이지도 않던 작은 점들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돼서 올라온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조각조각 부서져 있던 상처의 찌꺼기들이 아직도 많았었는지, 갑자기 가슴의 둑이 터지며 수많은 기억의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이젠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엄마의 손길인 양, 치유의 손길이 따뜻했다.
넬슨 만델라의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나의 상처와 아픔에만 갇혀 내가 나를 넘어뜨리고 일어설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넘어지는 것도, 무인도에 고립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서서 움직여야겠다. 나를 키우는 것도, 나를 가두는 것도 결국은 나였구나’하는 깨달음이 기차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우리가 내일을 실현하는 데 유일한 한계는 오늘에 대한 우리의 의심일 것이다."라고 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말이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나니, 뜨거운 태양과 거친 파도 앞에서도 두 팔 벌려 활짝 웃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잔잔한 바다에서 노 젓는 법을 배우고, 항로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길렀으니 이제 거친 바다에도 나가봐야겠다. 못한다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노를 저어 저 먼바다를 탐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