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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May 02. 2023

또 하나의 장벽에 가로막히다.

산 넘어 산이다.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무언가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지난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으며 사용했던 언어들 덕에 말귀는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흘려들어도 좋았던 그때와 달리 정확히 알고 이해해야 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리 읽어도 입에 붙지 않고 튕겨 나가는 단어들 덕에,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먹이라는 말을 절절히 실감했다. 갑자기 난독증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취업한 곳은 간호조무사 양성교육을 하는 기관이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게 될 직원들 모두 간호사들이었다. 그렇잖아도 낯선 분위기에 잔뜩 기가 죽어있는데, 나와 다른 옷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니 꼭 남의 집에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거기다, 모든 게 처음이고 부족한 것 투성이라 긴장의 끈이 더 팽팽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니,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곧추세우다 보니 순간이 영원 같을 때도 많았다. 누가 엿가락처럼 늘여놨는지 제자리에서 맴맴 거리는 것 같은데, 어느새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을 때도 많았던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업무는 교육생들의 출결관리와 훈련수당 청구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 업무를 도맡아야 한단다. 자격증을 땄다고는 하지만 실제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고 진땀이 흘렀다. 인계해 주는 말을 전부 적고, 퇴근 후에도 밑줄을 쳐가며 지침을 읽고 또 읽었다. 버벅대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지침을 잘 알아야 실수 없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똑소리 나게 잘하고 싶었다.


  뭉쳤던 어깨의 긴장도 풀리고, 낯섬으로 방황하던 마음도 조금씩 평온을 찾아가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쳤다. 오전 9시에 1교시가 시작되는데도 불구하고 행정 직원인 내가 매일 아침 8시 15분까지 문을 열어야 한단다.

오! 마이 갓~~

'이건 뭐지?'

분명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라고 했는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처럼 8시 20분에 막내아들을 등원시키면 된다고 좋아했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퇴사를 하는 직원 덕에 잠시 여유가 있지만, 온전히 내 몫이 될 일에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8시 15분까지 출근하려면 늦어도 8시에는 아들을 등원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아파트 내 가정 어린이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 근처에 가까운 유치원도 없다. 다니고 있는 유치원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해봤지만 그 시간 차 운행은 어렵다고들 했다. 남편도 일찍 출근해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덜컥 차부터 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렵게 한 취업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절망으로 허우적대며 숯검댕이 가 돼 가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8시쯤 어머님 직장 근처를 지나 출근하는 차량이 있는데, 그때 태워주실 수 있나요?" 

생각해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오케이다.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외치고 전화를 끊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꽉 막혀있던 속이 뻥 뚫리고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치열한 고난의 길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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