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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May 16. 2023

삼각김밥을 만드는 이유

추억과 생존의 콜라보 


  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남편은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 지금은 경력도 쌓이고 주 5일 근무로 쉬는 날이 많아졌지만, 아이들이 어릴 땐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날조차 아빠 없는 가족이 돼야 했던 우리에게 여름휴가란 단어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족 사랑이 별나게 애틋한 남편은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그 덕에 군대에나 있을 법한 '5분 대기조'가 일요일 오후면 우리 집에도 자주 발령됐다. 잠시 짬이 난 남편이 갑자기 '출발'을 외치면 순식간에 외출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 해수욕장도 가고, 이름난 명소도 찾아다녔다. 짧은 오후의 해거름 안에 많은 것을 보고 즐기려면 한가할 틈이 없었다. 즐겁고 행복했던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조금만 더'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을 나이들이었으니 얼마나 아쉽고 아쉬운 시간들이었을까? 쌓여가는 추억의 무게만큼 '미안함'이란 세포들까지 무차별 공격을 해 온건 그래서 일 거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더니 급기야 1박 2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새벽에 귀가하는 날이 잦아졌다. 조개구이와 불꽃놀이로 신나게 놀기도 하고 방갈로에서 삼겹살을 굽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면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 귀가하는 날이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과 달리 몇 시간 뒤의 일상이 걱정이었다. 아침을 안 먹으면 학교나 유치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기 시작했는데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 추억의 삼각김밥을 지금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삼각김밥 집 차렸냐고?”

"NO", 절대 아니다.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아침 준비하랴, 막내아들 깨워 등원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운 아침이다. 그런데, 김밥까지 만들려니 죽을 맛이다. 하지만, 밥이 없어진다고 우는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무사히 태우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눈 비비고 겨우 일어날 시간에 집을 나서다 보니 아침을 먹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도시락을 싸는 일은 너무 번거롭기도 하고 선생님들께도 죄송했다. 궁여지책으로 편의점 삼각김밥을 하나씩 들려 보냈는데 엄마로서의 양심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다 한참 유행인 삼각김밥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김밥을 전용 케이스에 넣어 등원하는 아이 손에 들려줬다. 


  먹을 줄만 알던 걸 만들려니 옆구리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배신하지 않는 ‘노력’이란 진리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제법 모양새가 갖춰졌다. 아니, 다양한 김밥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아들도 그동안 먹어 본 기억을 총동원해 이것저것 주문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능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던 아침이 추워지는 날씨에 탈이 났다. 잘 일어나던 아들이 게으름을 피우며 늑장을 부리는 것이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아이 손을 잡고 허겁지겁 나설 때면 이미 하루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기분이었다. 특히나,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거나 눈이 내리는 아침이면 안 잡히는 택시와 두 배로 올라간 칭얼거림에 숯검댕이 되었다. 다행인 건 물리고도 남을 삼각김밥을 여전히 좋아한다는 것과 겨울이 되면서 조금 여유가 생긴 남편이 가끔 데려다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빨리 히터를 틀어도 밤새 채워진 냉기가 쉽게 물러가질 않았다. 오들오들 떨며 유치원 차를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괜히 고생시키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아팠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알량한 욕심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고민되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삼각김밥을 손에 들고 때론 해맑게,  때론 칭얼거리는 투정에 일희일비하며 깊어가는 계절을 넘기 위해 애썼다. 워킹맘으로서의 첫 번째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힘든 고난 앞에 좌절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많았지만 주저앉고 싶진 않았다. 턱에 숨이 찰 때까지 죽어라 애써보지도 않고, 12년을 짓눌러온 좌절의 늪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나의 지나친 욕심이고 이기심일지 모르지만 몇 푼 안 되는 자존심과 미안함은 잠시 장롱 깊숙이 넣어 놓고 뻔뻔해지고 싶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이 어려움의 산을 잘 넘기고 나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란 확신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죽어라 앞만 보고 달렸다. 


  힘들면 그만두라는 남편과 아이들의 원성을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몇 개월의 겨울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잘 넘기 위해 애쓰다 보니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리처드 브랜슨이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한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라고 했나 보다.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애써야 할 나에게 "어려움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라는 비용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 뒤에 걸릴 '고진감래'란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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