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삶에서 더하기의 삶으로
전쟁 같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봄이 오기 시작하면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내 마음의 굳은 땅에서도 꿈틀꿈틀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취업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던 마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저 밑바닥에 봉인해 놓은 '진짜 나의 꿈'이 꿈들 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며 억지로 부정하고 다시 덮어 놓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둑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집안 형편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낭만보다는 생존의 숨을 가쁘게 뱉어야 했다. 장학금도 타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기에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꿈을 향한 무한질주를 하고 싶은 욕구는 식을 줄 몰랐다. 오히려, 용광로가 되기라도 한 듯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공부에 뜻이 없어 포기해야만 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많이 배우면 안 된다는 시대의 흐름과 무능했던 아버지와 절치부심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현모양처의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힘겹게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 핑계를 댔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결혼 후에도 미련이 남아 있는 걸 아는 남편이 대학원 진학을 계속 권유했다. 하지만 "가르치지도 못할 자식을 뭐 하러 낳았냐"라며 부모님 속을 후벼팠던 아픈 기억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자식들에겐 절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못하는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내 꿈'과 '내 이름'은 저 깊은 곳에 꽁꽁 묻은 후에 잠가버렸다.
그런데, 그 빗장이 풀리고 나란 이름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수백 번을 쓸어 담고 또 담아봤지만 자석에라도 끌리는 듯 더 강렬해지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경제적인 지출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폭풍전야에 살랑살랑 불어대던 비바람이 폭풍우가 되어 쏟아지는 것처럼 ‘나는 나’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결국, 1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07년 8월, 대학원에 진학했다. 신나고 즐거운 꿈에 부풀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십이 넘어가는 나이에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알량한 욕심에 아이들 뒷바라지할 돈만 낭비하는 것 같아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내 석사학위 취득이 자기 목표라며 남편이 몰래 등록금을 납부했다. 그 덕에 무사히 졸업을 했다.
그 이후로 내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아이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에서 나와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준비와 투자를 과감히 시작했다. 매년 한두 개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에게 올인했던 삶에서 나를 위해 일정 부분의 지분을 옮겨왔다. 더 이상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발버둥 치며 애태우던 때보다 더 즐겁고 여유로워졌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마음에 행복이 깃들자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빼기의 삶이 더하기의 삶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흔한 자격증이 됐지만 2006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한 '직업상담사'란 자격증을 취득해 대학원 재학 중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한 직업학교에서 대학원에 다닐 수 있는 조건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직업학교 시설인가 필수 조건인데 그때만 해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귀한 몸값을 자랑하는 자격증이었기 때문이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고,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당연히, 하늘이 내려 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두 번째 취업을 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의 신이 찾아온다고 하더니 우연히 취득한 자격증 덕분에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졸업 후, 공부하며 준비했던 길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을 주기도 하고, 기다리고 앉아 있는 삶에서 찾아가서 문을 두드릴 줄 알게 되었다.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으로 모험을 떠날 줄 아는 탐험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나의 꿈을 자식들의 어깨에 얹어 놓고 짓누르지 않는다. 때론, 그 꿈 때문에 좌절하고 괴로워 몸부림칠 때도 있지만 절대 포기하거나 멈추고 싶진 않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그 힘이 아니라 꾸준함’이란 것을 알기에, 숨이 다하는 날까지 쉬지 않고 걸어갈 계획이다. ‘내 꿈은 내가 꾸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