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이 아니라 안타깝다고?
어느새, 센터장으로 일한 지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경험과 확장을 위해 이직도 했고 심장을 꼬집히는 것 같은 고배의 잔도 마셨다. 분에 넘치도록 행복했던 영광의 순간도 있었고, 죽도록 창피하고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던 순간도 있었다. 모두가 찰나의 순간이고, 하나의 점에 불과한 시간들이었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던 2019년 말에 이웃 도시에 있는 한 기관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시를 넘어 다른 도시로 출퇴근을 해야 되는 일이라 모두들 말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던 일 위에 다른 일을 더 해 볼 수 있는 기회라 욕심이 났다. 무엇보다 퇴직 후 내가 활동하고 싶은 단체가 함께하고 있어 고집을 부렸다. 당황하는 운영주체와 지자체와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2020년 1월 6일 이직을 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22년 12월 31일에 퇴사를 했다. 아니 내쳐짐을 당했다는 게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코로나로 뛰고 싶은 만큼 맘껏 뛰어다닐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업무는 10년을 넘게 해 온 일이고, 고용노동부의 직업교육훈련과 내일배움카드, 유료 교육사업들도 비슷한 맥락의 일들이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여성 20명으로만 이루어진 직원들과 상견례를 하고 서로를 파악하는 탐색전과 코로나로 모든 곳의 문이 닫혀 옴짝달싹 못하는 게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의 25년 역사에서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새일센터사업과 국민취업지원제도(전 내일배움카드) 운영평가에서 2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직업훈련을 하기 위해선 직업능력훈련기관 인증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동안 센터가 받았던 3년 인증이 아니라 우수훈련기관인 5년 인증을 받았다. 사업 수익도 통장에 찍혔던 숫자의 2배가 넘는 성과를 거두며 모두가 인정하고 칭찬하는 센터로 성장시켰다.
직원들의 잦았던 이직이 줄어들고 좋은 실적과 평가를 달성했기에 2022년 9월까지만 해도 당연히 재계약을 할 줄 알았다. 처음엔 정년보장을 약속했다가 중앙의 신운영정책에 따라 3년마다 연장 계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운영주체 내부에 문제가 생기자 자기 식구를 챙겨야 한다는 미명 아래 내 목에 칼이 들어왔다. 자리는 하나인데 사람이 둘이라 어쩔 수 없다며 계약 종료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루아침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내세운 지역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3년 전 순환보직을 할 수 있냐며 물어보시던 님들이 이제는 '지역주민이 아니라 안타깝다'라고 하셨다.
인정받고 박수받아 마땅한 일을 하고도 혈연·지연·학연이라는 덫에 걸려 내처짐을 당하고 얼마나 많이 분노했는지 모른다. 억울하고 분해서 수도 없이 삿대질을 해댔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너트린 자존심이 아닌데 내 처지가 창피하고 누구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웠다. '네가 뭘 잘못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들을까 봐 사람을 피하고 숨었다. 피해자인 내가 왜 구차한 변명을 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직업능력훈련기관 인증평가에서 5년 인증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직업훈련을 주업으로 하는 기관에서도 받기 어려운 결과라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짝팔짝 뛰며 축하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씁쓸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뒤를 이어 내 그릇이 간장 종지보다 작은 것 같아 창피해졌다.
내쳐짐을 당한 10월 6일부터 12월까지 이런 롤러코스터를 몇 번이나 탔는지 모른다. 직원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었지만 3개월 동안 타들어 간 속으로 시커먼 동굴이 뻥 뚫렸다. 그 뚫린 속을 무엇으로 다시 채워야 할지 아니,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버릴 것 같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송곳으로 찌르고 장작불로 태우는 듯한 아픔에 온몸이 데일 듯 아프고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