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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Apr 20. 2023

허물을 벗어야 나비가 될 수 있다

중이염은 마지막 몸부림일까?


  죽어라 고생하다 먹고살 만해지니 병을 얻는다더니 퇴사 후 몇 달 동안 호되게 앓고 나자 중이염에 걸렸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한적한 제주의 시골이라 이비인후과가 없어 내과에 갔다. 염증이 전체적으로 심해 잘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불편하고 걱정도 됐지만 후련하기도 했다. 이 지난한 싸움의 끝을 알리는 폭죽과도 같은 아픔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료차트에 쓰인 주소를 보고 의사 선생님이 반가워하셨다. 자기도 이웃 도시가 고향이라며....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작은 공통점 하나로 이렇게 반가워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도 그럴진대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엮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상처의 찌꺼기가 진한 고름으로 토해지고 있는 이때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어차피 해보나 마나 한 싸움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기란 것부터 해야 했다. 그래서, 더 억울했고 더 많이 아팠다. 계란이라도 던져볼 수 있는 바위와의 싸움이라면 그렇게까지 무너져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기에 발가벗겨진 채 허허벌판에서 폭풍우를 고스란히 맞는 심정이었다. 하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반가워했던 해외여행을 떠올려보면 어쩔 수 없는 피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개월을 간신히 버티자 영광의 상처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키보드를 너무 두드려 손목도 나가고 손가락도 저렸다. 체중도 2kg이 늘었다. 온몸의 근육이 통나무처럼 굳어 조금만 움직여도 '아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변호하고 방어해야 하니 마음도 갈가리 찢어졌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숨기려 더 깊은 굴을 파느라 모든 게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가족들의 따뜻한 위로와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면 아직도 어느 벌판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도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으면서 내 상처만 바라봐 준 남편의 정성을 모른 척했다. 이제 사회 초년생인 아이들이 '수고하셨다'라며 명품 스카프와 재킷을 선물할 때도 기쁨보다 슬픔이 더 컸다. 그런데, 그 사랑의 물결이 어느새 내 마음을 덮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한 것이다. 지독한 몸부림 끝에 내가 끊어놓은 관계의 줄을 다시 잇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묶어 놓은 매듭이 아직 아프고 부끄러웠지만 먼저 연락을 했다. 일방적 피해자가 자기의 피해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끊어버린 관계였다. 그걸 마주하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도 묵묵히 견디며 앞으로 전진했다.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폭풍우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 애씀이 종착지에 다다랐는지, 만신창이가 되어 안 아픈 곳이 없는 몸과 달리 평화롭고 고요했다. 아니 이전과 다른 나로 살아갈 희망으로 차고 넘쳤다. 속에 있는 찌꺼기를 모두 토해내고 이제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2주 전부터 이상 증세가 느껴졌다.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처럼 먹먹해지기도 하고 한 번씩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도 느껴졌다. 감기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어젯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진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직도 남편에게 더 받고 싶은 위로가 남아 있었던 걸까?’ 아님, ‘여행지에서 깨끗이 치료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마지막 찌꺼기를 남편과 함께 토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마주해야 했다면 조금은 외로울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서 참 좋았다.

 

  제주도로 넘어오면서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노트북 충전기를 가져오지 않아 엄청 화가 났었는데, ‘강제 쉼을 위한 무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진행하고 있는 챌린지 피드를 모두 준비해 온 것도 같은 이유라고 자위도 했다. 확증편향일지도, 억지춘향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고 정몽주를 향해 손을 내민 이방원처럼 나도 나의 아픔에 손을 내밀고 싶은 것이다. 내 멋대로 해석하고 보니 작은 속상함들이 오히려 감사와 쉼의 언어가 되었다. 그동안 막혀있던 혈관들이  서서히 풀리고 온몸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래서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하나보다.

  


  허물을 벗어야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 수 있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나도 얼른 쓸데없는 자존심의 껍데기를 훌훌 벗어버리고 고름도 짜내고 성능 좋은 밴드도 붙여야겠다. 새로운 날개가 다시 돋아나고 자유롭게 비상할 날이 곧 다가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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