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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Aug 17. 2023

내 꿈은 솥뚜껑 운전사가 아니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도전의 길


  솔개라는 새는 70년을 산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선 40살 정도가 되었을 때 중대한 결심을 해야 된다. 노화된 부리와 발톱, 무거워진 날개로 죽음을 기다리던지, 새로 태어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견딜지 결정해야 한다.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 것이다. 천적을 피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피가 나도록 부리를 쪼아대고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는 6개월의 고통을 견뎌낸 솔개만이 새로운 부리와 날개를 가지고 30년을 더 살 수 있다. 


 

  솔개처럼 어마어마한 결단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건 아니지만 힘겨운 문턱을 잘 넘어서고 나니 나에게도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 캄캄한 암흑처럼 짙고 깊었던 상처에 부드러운 치유의 숨결이 찾아든 것이다. 마치 잘 듣는 연고처럼 피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하며 솔개처럼 새로운 부리와 날개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깊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길 기다리기나 한 듯 좋은 소식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래서 ‘고난 뒤에 낙이 온다’고 하나보다. 제일 먼저 지역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직업상담사 과정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부랴부랴 훈련교사 등록도 하고 필요한 교육도 받으며 준비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 지금까지 했던 일과 비슷하긴 하지만 대상자가 전혀 다른 OO 기관의 사무국장이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체면과 자존심이라는 허울을 내려놔야 하는 일이라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하지만, 바닥까지 꺼져있던 자존감이 마중물 한 바가지를 만난 것처럼 쑥 하고 올라오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렇게,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타 지역이긴 하지만 20년 가까이 일했던 기관에서 관장 제의를 해왔다. 다시 취업하지 못할까 봐 까맣게 타 들어가던 속에 기회의 물결이 봇물처럼 몰려온 것이다.

 

  직업상담사 강사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미래의 꿈이고, 새로운 직종으로의 전직도 구미가 당겼다. 마지막,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내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일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이거 다.' 하고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가장 하고 싶은 강사는 3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주어진 일이다. 해마다 수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기간은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허허벌판이라 두려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쉬운 길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그 길 하나밖에 없을 땐 그게 동아줄인 줄 알고 열심히 매달렸는데, 이리 쉽게 흔들리니 말이다.

 

  새로운 직종으로의 전직도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하지만, 내려놔야 할 게 너무 많다. 덜컥 원서를 냈는데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고, 합격한다 해도 작은 지역사회에 조금 알려진 이름이 걸림돌이었다. 기관장으로 8년의 세월을 살았는데 사무국장으로 재취업을 한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게 신경 쓰였다. 거기다 100만 원이 넘는 급여 차이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물며 어차피 떠날 곳이었다. 몇 년 전, 집을 짓기 위한 작은 땅을 고향에 준비해 뒀다. 주말부부이고 아이들도 모두 독립해 언제 떠나도 큰 미련과 불편이 없는 곳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깊은 상처 자국이 남아있는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결정의 갈림길에 서서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그 끝에서 조금 더 아프더라도 이곳에서 새로운 나와 마주 서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도망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되어 떠나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제법 친한 친구들과 익숙한 것들을 다 버리면서까지 새로운 길을 가야 할 이유가 흐려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아무래도 치열한 상념의 터널을 넘나들며 마음에 남아 있던 찌꺼기들이 옅어졌나 보다. 분노와 억울함으로 버티고 있던 명분이 사라지자 또다시 무인도를 개척하는 것보다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밭을 일구는 게 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들을 쌓다 보니 그동안 살아온 30년이란 세월 위에 다시 둥지를 틀고 싶어졌다.


  2023년 5월 1일,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백수의 삶이 막을 내렸다. 퇴사 후 온라인 회원가입이나 박람회라도 갈라치면 직장명을 꼭 적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초라해졌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당당히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원치 않는 방법으로 찍었던 마침표가 커다란 쉼표가 되어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게 그렇게도 서러웠는데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고 행복했다. 


  내가 입고 있는 껍데기의 허울을 벗기 위해 작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좌고우면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행운의 여신이 나와 함께 할 것을 믿는다. 원시림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처럼 새로운 걱정으로 긴장되고 제멋대로 나대는 심장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인 도로시가 되었다가 다시 집에 돌아온 것만 같다.


   나에게 주어졌던 4개월의 여정은 크고 작은 일의 무게보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과,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이란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 아픔과 치유와 회복의 산을 넘으며 어떤 고난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단단한 옹이가 만들어졌다. 그건 어쩜, 나에게 찾아온 신의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곧 다가올 세 번째 스무 살의 고개 앞에서 허둥대거나 당황하지 말라고 예방주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진흙탕에 빠져봐야 마른땅의 소중함을 알고, 폭풍우를 견뎌봐야 파란 하늘의 청아함을 귀하게 여길 줄 안다. 견뎌낼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지금 이것들과 마주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불현듯 생각나는 건, 그 소나무가 견뎌낸 고통을 아주 조금 엿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무너지고, 내가 없어질 것 같은 좌절감을 한 번의 독한 몸살로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빛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마음이 열리고 숨 가쁜 호흡을 토해낼 열정이 심어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호흡 한 자락에 대고 '내 꿈은 솥뚜껑 운전사가 아니다'라고 강력히 외쳐본다. 


  내일 나에게 또다시 어제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이젠 바보처럼 억울해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 소독도 하고, 연고도 바르고, 붕대도 감은 후에 나에게 주어진 길을 다시 걸어갈 것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 영광의 흔적만 남겨 놓을 것을 알기에 순례자의 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아직은 솥뚜껑일랑 저 멀리 두고 멋진 나의 삶과 씨름하며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기에 '30년 + α'삶이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만날 경이로움에 대한 기대로 조심스럽게 시작할 용기와 자신감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는 건 분명 커다란 축복 일 것이다. “평지를 만들 때 비록 한 삼태기의 흙을 쏟아부어 시작함도 내가 나아간 것이다(출처: 1일 1강 논어강독, 박재희).”라고 말한 공자의 말을 거울삼아 한 발자국의 힘을 실천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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