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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Sep 16. 2023

내 발 등을 내가 찍은 채용망(亡)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인사가 만사라는데 그 인사를 망(亡)사로 해버린 뼈아픈 경험이 있어요. 8년 전 그날은 첫사랑의 아픔처럼 잊지 못할 상처의 날이에요. 아니 치욕의 날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아무리 성능 좋은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도 아물 듯 아물지 않고 생채기를 내고 있는 치명적 실수를 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약속을 한 장소로 들어가기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요. 직원 채용공고를 내고 접수기간 중이었는데 지원 조건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이곳에서 자세히 말하기 어려운 게 아쉽지만 한 번도 채용해 보지 않은 분야에 대한 적격 여부를 법령까지 들어가며 얘기했어요. 센터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아닌 줄 알면서도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했어요. 헐렁해진 흙을 뚫고 나오려는 새싹들에게 불어닥친 꽃샘추위 같았다고나 할까요? 뿌리가 들뜨지 않도록 단단하게 밟아주고 햇볕도 쪼여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결국, 제 신념과 기관의 방향성이 아니라 소위 외압에 의한 채용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채용된 직원은 입사하자마자 지자체에 황당한 민원을 넣고, 직원들을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했어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기관이라 그잖아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교묘하게 감정의 선을 자극하며 부추김을 해대는 통에 퇴사를 하는 직원들도 왕왕 생겼지요. 센터장인 저와 총괄팀장의 꼬투리를 잡겠다고 '들고남'까지 일일이 적어대서 다른 사람보다 몇 배를 더 신경 쓰고 조심해야 했는지 몰라요. 그렇다고 업무능력이 뛰어나냐 하면 저질러 놓은 일을 무책임하게 방치해 도청에까지 민원이 들어간 적도 있어요.

 

  센터엔 애정이 1도 없다면서 퇴사도 안 하더니 팀장 채용공고가 났을 때 또 인사청탁을 해왔어요. 내규를 뛰어넘을 능력은 둘째치고 근무경력에서부터 자격 미달인데도 불구하고 정치력까지 동원했어요. 자기가 팀장이 될 차례인데 제가 미워해서 승진을 안 시켜준다고 했다면서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어요. 하지만, 센터를 여러 번 곤란하게 한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관계 기관에선 추후 본인들이 난감해질 입장을 생각해서인지 채용을 종용했어요. 

  면접일, '뽑으라면 뽑겠으나 제가 사표를 내겠다. 이 청탁 받지 않아야 나중에 발목 잡히시지 않는다.'라고 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어요. 다행히, 저의 뜻대로 일단락됐지만 그 직원과의 갈등은 더 커졌지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더 큰일로 제 목에 칼을 겨누고 들어온 거예요. 한바탕의 소동이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가고 '직원관리 잘못한 죄'라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센터장의 옷을 제대로 갖춰 입기도 전에 한 실수라지만 기본과 공정을 '제1 근무 원칙'으로 삼고 있던 저의 치명적 오류임에는 틀림없어요. 그 한 번의 실수로 함께 근무했던 8여 년의 시간을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슬아슬하게 버텼고, 센터는 겪지 않아도 되는 사건사고를 많이 겪었으니까요. 그 직원이 저를 고소하겠다는 일도 있었고, 교육생이 그 직원을 고소하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 민원을 해결하느라 얼마나 읍소하고 또 읍소했는지 몰라요. 시계를 돌려 거절하지 못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호하게 'NO'라고 말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간 실수가 지금도 뼈아프게 후회스러워요.


  사실, 그 직원이 취업을 한자리는 모두가 탐을 낼 만큼 좋은 자리도 아니고 편한 자리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안정적인 사무직에 취업을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나 봐요. 하긴, 작은 중소도시라 변변한 취업처가 적다 보니 번듯하게 차려입고 주 5일 근무에 일·가정 양립이 보장된 곳이라는 강점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곳이긴 해요. 하지만, 인기가 많은 반면 이직도 많았어요. '여자 3D업종'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거칠고 힘든 현장이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홍보도 많이 되고 네트워크도 잘 돼서 좋아졌다고는 하나 반겨주지 않는 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진상을 부리는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일은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거든요. 오죽하면 '간 쓸개는 현관 앞에 꺼내놓고 출근했다가 집에 가면서 찾아가자'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겼을까요? 그럼에도 보여지는 것들 때문인지 줄을 대고 서류를 넣는 사람들이 그 후로도 왕왕 있었어요.

 

  그때부터 용기가 필요한 두려움 앞에 설 때마다 "용기는 공포를 극복하는 능력이다."라는 마크 트웨인과 "자신의 원칙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라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말을 되새김질해요. 덕분에 어렵고 힘든 때마다 지킨 원칙과 신념이 저를 자유롭게 하고 더 큰 것들을 가져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신뢰받는 발판을 만들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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