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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미라클 Sep 09. 2023

행동하는 용기, 꿈을 찾는 Luck-Key

내 인생의 나이테


   나이테를 보면 그 나무가 살아온 역사를 알 수 있다고 하죠? 저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에도 다양한 무늬의 인생테가 만들어졌는데요.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뭉클뭉클 솟아오르네요. 거칠고 볼품없는 것도 참 많은 것 같은데, 힘들었던 기억들은 다 어디 가고 흐뭇하고 대견하기만 한건 왜일까요? 그건 바로,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듯 쓰라린 고통을 통해 단단하게 영글어간 기특함 때문이겠죠.

 

  결혼 후, 12년을 전업주부로 살았어요. 제 이름과 꿈은 감히 꺼내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마른 장작개비처럼 말라가던 시간이었죠? 그렇다고,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게 힘들거나 불행하다는 건 아니에요. 가족밖에 모르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의 재롱에 웃음이 넘쳐나는 집이었죠? 그럼에도, 제가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이었기에 도심 속의 무인도를 전전하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깊은 나락에 빠져 허우적대던 어느 날, 직업학교의 교육생 모집 현수막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게 됐어요. 다시 말해, 우연히 Luck-Key를 손에 쥔 거죠?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성경 말씀(마태복음 7:7)처럼 열심히 두드리고, 찾았더니 문이 열리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고 할까요?

 

  마흔을 바라보는 주부가 ‘취업’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게 불경스럽게 느껴지던 20년 전이기에 직업학교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두렵고, 창피하고, 가슴 떨렸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행동한 용기 덕분에 제 이름을 다시 찾았고, 당당하게 일하는 직장인이 되었어요. 무섭다고,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주저앉았다면, 아직도 누군가의 섬에서 조난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어렵게 하나의 문을 열고나자, 또 다른 문들이 기다리고 있어 깜짝 놀랐어요. 처음엔 일가친척은 커녕 친구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키워내는 일만으로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지요. 하지만, 차츰차츰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렵고 무서웠어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문을 열어줘야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만든 새장 안에서 저 스스로 꼭꼭 걸어 잠그고 있었다는 걸 알고 얼마나 당황스럽던지요. 날고 싶어 바둥대느라 여기저기 찢기고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손안에 있는 열쇠를 왜 못 봤는지 모르겠어요.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동안 직업학교를 다녔어요. 여고생이 된 기분으로 도시락도 까먹고, 경진대회에 나가 금상도 타며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하다 꿈에도 그리던 ‘취업’이란 날개를 달았지요. 하지만,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어요. 어린 자식을 두고 야근을 밥 먹듯 할 때도 있었고, 높디높은 유리천장도 실감했지요. 때로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는 쓰라린 경험도 했고, 난처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애태운 날도 많았어요. 남편 내조와 자녀 양육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던 세대답게 소홀해지는 가정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갈대처럼 사납게 불어대는 파도 속에서 18년이란 세월을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버텼어요. 최저 임금을 받는 행정 직원으로 시작해 한 기관을 운영까지 해봤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시간이에요. 

 

  원치 않는 퇴사였지만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몇 개월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많이 울고 억울함에 분노하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쌓아 올린 단단함 때문에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어요. 한 우물만 파느라 좁아졌던 시야가 틔이고, 우물 안 개구리가 넓은 세상을 향해 뛰쳐나온 것 같아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 할아버지가 대어를 낚기 위해 거친 바다와 싸우고 돌아온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앞으로 주어질 삶의 파도도 아주 거칠게  넘실 대겠죠? 그게 어떤 모양이더라도 이젠 주저앉거나 탓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하고, 행동하는 용기를 길러 놓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의 여신이 저를 찾아올  거라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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