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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02. 2023

내가 2대 1로 당하다니

부녀는 한패였다

2023. 9. 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정말 괜찮을까? 최소한 30cm 멀리 떨어져서 사용하라던데? 그래도 좀 찝찝하네. 하도 사방에서 전자파 얘기하니까. 아빤 뭐 하러 이런 걸 세 개씩이나 샀나 몰라."

"에휴, 엄마. 그런 거 무서우면 아무것도 못해. 전자파 무서워서 선풍기 안 쓸 거야? 세상에 전자파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쓰는 게 다 전자제품이잖아. 그렇게 무서우면 뭘 쓸 수 있겠어? 그렇다고 안 쓸 거야? 그냥 써! 다른 것도 마찬가지야."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이 할 법한 말만 네가 딱 했구나.


"합격이 말이 맞네. 그런 거 다 따지면 아무것도 못해. 너희 엄마는 하여튼 또 뭘 봐가지고."

난데없이 모녀의 대화에 끼어드는 한 남성이 있었으니, 휴대용 선풍기 전자파의 논란에 불길을 당긴 문제의 구매자다.

그 남성은 선심 쓰듯 몇 달 전에 휴대용 선풍기를 세 대씩이나 사서 우리 멤버에게 하나씩 배부했다.

"엄마는 마트 갈 때나 운동할 때 쓰고 너희도 학교 갈 때나 어디 놀러 갈 때 가지고 다니면서 써."

이렇게 선심 쓰듯(하지만 선심이라기보다 세일을 하는데 사지 않을 수 없었던 프로 쇼핑러이시다.) 우리에게 쥐어줬다.

그런데, 한창 휴대용 선풍기의 전자파에 대해 여기저기서 언급하던 때가 있었다.

언젠가도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다시 들으니 괜히 그동안 잘 사용해 놓고 이제 와서 흉물스럽게까지 보이는 것이다.

저 요망스러운 것이 우리 가족을 병들게 할지도 몰라.(=그 남성은 왜 저런 걸 사 왔담?)

전자파가 그렇게 안 좋다던데.(=그 남성은 왜 저런 걸 사 왔담?)

사기 전에 꼼꼼히 잘 알아보고 살 것이지.(=그 남성은 왜 저런 걸 사 왔담?)

저 사람은 뉴스도 안 보고 사나?(=그 남성은 왜 저런 걸 사 왔담?)

혹시 일부러 나 전자파 많이 쐬라고 사 준 거 아냐?

레이저 피부 시술은 못해줄망정 그 전자파라도 많이 많이 쐬라고?

설마?


그 남성은 참지 못하고 급기야 한마디를 했다.

"진짜 말 많네. 좋다고 맨날 여기저기 가지고 다니면서 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렇게 불만이야? 하여튼 너희 엄마 변덕은 알아줘야 돼. 뭐든지 사면 제일 잘 쓰는 사람이 말이야. 꼭 나중에 딴 소리나 하고. 그렇게 쓰기 싫으면 쓰지 마!"

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쓰기 싫다고는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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