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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2. 2023

너의 수련회 필수품은 멸균 거즈야

대비하는 거야, 알겠지?

2023. 6. 11. 요긴하게 쓰일 거야.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 거즈 챙겨가야 하는 거 아니야?"

"맞다. 챙겨가야지 그럼."

"거즈가 어디 있지?"

"엄마가 찾아서 줄게.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 말 잘했다."

"그건 당연히 챙겨 가야지."

"그래. 그래야지."


오늘 5학년 딸이 수련회를 간다.

거즈를 꼭 챙겨가야겠단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엄마, 나 수련회 가서 이가 빠져버리면 어쩌지?"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이 말했다.

"네가 억지로 건들고 만지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갑자기 빠질 수가 있잖아."

딸은 뭔가 직감적으로 느낀 걸까? 자꾸 흔들리는 이에 집착을 했다.

"음식 딱딱한 거 안 먹고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가능하면 안 흔들리는 쪽으로 씹고. 아무튼 신경 써서 조심해 봐."

저런 말 외에 달리 해 줄 말도 없었다.

"수련회 가서 밥 먹다가 빠져버리면 어떡하지?"

"누나, 내친구들도 급식 먹다가 이 빠진 애들 많아."

불쑥 아들이 나섰다.

"밥 먹다가 빠지면 안되는데."

동생의 생생한 간증에  딸은 근심스러워 했다. 별 걱정을 다 한다. 물론 딸의 걱정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긴 하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최대한 조심해 봐. 집에서 빠지면 엄마가 어떻게 해 주겠지만 거기선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도 다 신경 쓰고 해야 하니까 일일이 다 못 챙겨 줄 수도 있어. 어느 정도는 네가 직접 처리해야 되는 일들도 있어."

물론 조심한다고 다 예방이 되는 것도 아니란 것쯤은 나도 잘 안다.

"그냥 오늘 확 빼 버릴까?"

딸은 미처 마치지 못한 숙제를 얼른 해치워버리려는 사람처럼 조급해했다, 고 나는 느꼈다.

그때 자그마치 10살이나 먹은 동생님이 '또' 나서 주셨다.

"누나, 오늘 이 빼버리면 내일 가서 맛있는 것도 못 먹을 텐데?"

수련회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음식 기행쯤으로 아는지 아들은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맞다! 진짜 그렇겠네. 오늘 안 빼야겠다.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딸도 제 동생처럼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1박 2일 수련회를 가는 거지 1박 2일로 음식을 먹으러 떠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남매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나는 생각했다.

음식을 편하게 못 먹는 건 둘째치고 갑자기 이라도 빠져 버리면 딸이 혼자서 뒤처리를 어떻게 하나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피를 보게 될 일이 될 테니까.

"엄마. 거즈를 챙겨가면 되지 않을까? 이 빠지면 물고 있어야지."

어쩜,  누굴 닮아서 생각하는 것도 이렇게 야무지담?

(사람들이 다 나를 닮았다고 한다는 점을 은근슬쩍 밝히고 싶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건 '외모'지만 스리슬쩍 묻어가고 싶다.)

"정말 그럼 되겠네. 어쩜 우리 합격이는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그럼 엄마가 챙겨 줄 테니까 혹시라도 중간에 이가 빠지면 얼른 선생님한테도 말하고 거즈 물고 있음 되겠다. 그치?"

물론 그 자리에서 얼른 거즈를 물 생각도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치과에서건 집에서건 이를 빼면 항상 바로 거즈를 물었던 기억을 떠올렸나 보다.

사실 집에서는 내가 준비를 다 해주면 딸은 고작 앙 물고 있는 게 다였다.

"혹시 보건 선생님도 가셔?"

"몰라. 저번에 체험 학습 때는 같이 가셨는데."

"그래? 그럼 이번에도 가실 수 있겠네. 진짜 갑자기 무슨 일이 나면 간단한 건 보건 선생님이 바로 처리해 주실 수 있으니까. 그걸 진작에 알아볼 걸 그랬네."

일요일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이라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기도 죄송스러웠다.

휴일에 직장 일로 연락을 받는 것처럼 상큼하지 않은 일도 없다.

게다가 일정이며 인솔자들은 이미 다 정해져 있을 테고 말이다.

그저 딸이 수련회에 가서 거즈를 물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거즈를 챙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해서'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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