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Oct 20. 2022

축, 요주의 인물 당첨!

출근 첫날 회장님씩이나 뵈었다.


22. 10. 19. 첫날부터 위험 경보 발생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저기 회장님 오시네, 뭐해? 얼른 일어나서 인사드려야지."

면사무소에 웬 회장님이 다 출타하신담?

지방 출장 차 들르셨나?

얼떨결에 분위기 파악도 못한 채 인사부터 드렸다.

"회장님. 이번에 새로 온 우리 직원이에요. OOO과장님 아시죠? 그 조카라네요."

어느 대그룹의 회장님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뵙는 이 분에게까지 또 그런 말씀을 굳이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응, 새로 왔다고? 어디서 왔어? 잠깐 이리 좀 와 봐."

자고로 회장님들은 상대를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그날 몸소 체험했다.

드라마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전혀 소속이 같을 수 없는 분이지마는 출근하자마자 공무원의 의무 중 '복종의 의무'를 실감 나게 해 주신 분이시다.


사람의 기억이 유난히 또렷한 때가 있다.

내게는 공무원이 되어 발령지로 첫 출근한 그날이 그러하다.


복지계(당시에는 명칭이 그랬다.) 빈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했다.

'나는 일반행정직인데 왜 복지계로 보내지?'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일반행정직이면 거기에 맞게 따로 떼어진 그런 일이 있는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 맞다.

복지계는 무조건 복지직만 가는 곳인 줄 오해했었다.

내 전임자가 다른 데로 가서 한 자리가 비니까 우선 당분간만 거기서 일하란다.

당분간 만이라고 했다 분명히.


최종 합격을 하고 필요 서류를 내러 갔을 때였던가.

인사 담당자는 근무 희망 지역을 적어 내라고 했다. 공시생의 허물을 벗은 지 얼마 안 되어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던 순진한 합격자는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1 지망부터 신중히 써 내려갔다. 3 지망까지 썼던가 5 지망까지 썼던가?

근무 희망 지역, 내가 왜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을꼬? 이럴 줄 알았더라면 미리 생각해 오는 거였는데 말이다. 준비성 없는 자신을 마구 탓했다.

그러나 근무 희망 지역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빈자리가 있는 곳으로 발령 났다.

그때 내가 겪었던 내적 갈등이 다 허무할 정도였다.

"쓴다고 다 그대로 발령 나진 않아. 그냥 형식적인 거라고 생각해."

이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곧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고(그곳에서는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기간을 '곧'이라고 했다. 하반기 정기인사이동이 있은 지는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새로 후임자가 오면 나를 다시 다른 계로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면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일행은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 봐야 돼. 못하는 거 없이 다 할 줄 알아야 하고."

출근 1일 차 백면서생에게 부담감이 양 어깨를 짓눌렀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공무원의 꽃'(인강 때 강사에게서 들었던 말인데 어쩜 뇌리에 쏙 박히던지)이란 말인가? 그래, 꽃은 어딜 가나 다 해내야 해. 가라는 대로 가고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건가 봐. 꽃이라잖아?. 나쁠 거야 없다. 이런 일 저런 일 두루두루 해 두고 배워놓으면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때만 해도 공무원이 하는 일이 그렇게나 오만가지인 줄 몰랐었다.


내 옆의 주사님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셨고  계장님도 유쾌하시고, 내 사수는 조용하고 말 없었지만(그래서 너무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모르는 걸 물어보면 친절히 잘 가르쳐주셨다. 온통 모르는 것 천지였으니 하루 종일 붙잡기 일쑤였다.

돌이켜 보면 그 첫날부터 마지막 사직서를 낼 때까지 직원들과는 큰 마찰 없이 그런대로 잘 지냈던 것 같다. 물론 그분들 얘기도 들어봐야겠지만 말이다. 난 인복 있는 사람이라고 항상 느끼며 직장생활을 했다. 공직생활을 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직원들과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많다. 

무엇보다도 어른으로 존경할 만한 윗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 마음 맞는 직원들도 몇 만났고 허물없이 서로의 집도 드나들면서 밥도 먹고 근무시간 외에도 따로 만나기도 했고 비슷한 또래의 자녀들끼리 어울려 놀게도 했었다.


첫날이라 적응 따위는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이므로 감히 꿈도 못 꾸고 얼떨떨해 있는데 옆의 주사님이 찾아오는 민원인들에게마다 인사를 시킨다.

그날의 압권은 단연 회장님이셨다.

"새로 온 직원이라고? 나랑 얘기 좀 하게 이리 좀 와 봐. 내가 장애인 회장이야. 앞으로 나랑 자주 만나고 그래야 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먼저 알리고 상의해야 되고 알겠지?"

아무렴요, 오라면 가야지요. 국민의 봉사자이자 복종의 의무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신규자잖아요.

그날 난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곳에서 공무원은 을이다, 을.


1시간도 넘게 이야기가 이어지고(이야기라기보다 회장님의 일방적인 훈계) 속으로 저 말씀들이 다 뭔 소린고? 하며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불편한 면담 시간을 가졌었다. 긴 시간 동안 나를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맙게도 방해하는 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들 나를 강하게 키울 심산인가 보았다.

결론은 그동안 담당자들이 장애인회를 너무 안 챙겨줘서 서운하다(사실 여부는 확인 불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가능성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똑바로 잘해라, (그럼 그동안은 비뚤게 못했었다는 얘긴가?) 신경 좀 써라(신경을 안 쓰지는 않았을 것이고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었을 텐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앞으로 지켜볼 거야, 어떻게 하는지. 알았지? 똑바로 잘해 봐."

아니 지켜본다뇨? 도대체 뭐를요?

군수님, 면장님께서도 안 하신 말씀을 회장님이 다 하시네?

그럼 이 분은 그보다 더 높으신 분이란 말인가?

이 자리가 원래 이런 소리 듣는 자린가?

결연한 태도로 일관되게 나의 앞날을 주시하고야 말겠다는 그분께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더 무어 있겠는가.

솔직히 알겠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대답만이라도 저리 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회장님 가시는 걸음에 신규자는 사무실 문 밖까지 배웅을 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졌다.

덩달아 당장 집에라도 가고 싶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은 내게 옆자리의 주사님이 무표정하게 말씀하셨다.


"저 양반 보통 아니야. 잘못 걸리면 좋을 거 없어. 조심해."

이 말씀만 하시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앞으로 '저 양반'한테 잘못 걸릴 게 뭐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다.

뭔가를 잘못하게 된다면 회장님께 잘못 걸리기 전에 법에 먼저 걸릴 것이다.

'나는 그냥 내 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세계를 모르는 신규자 혼자만의 생각이오 착각이오 큰 오산이었다.


이전 02화 공무원 임용 첫날 나는 유배지로 발령받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