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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8. 2022

신규자.내 조카를 소개합니다, 관심은 없겠지만.

남들은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답니다.


22. 10. 17. 너무 눈 부신 해는 눈을 감게 만든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직원님들, 잠깐 하던 일 멈추시고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이 신규자가 이번에 우리 군에 합격한 내 조카입니다. 서로 인사들 하세요."

"안녕하세요? 글임자입니다."

"아, 이번 합격자가 과장님 조카라고 하시던데 그 조카구만?"

"아, 네, 안녕하세요?"

"축하해요, 과장님도 좋으시겠어요, 조카랑 같이 일하게 되셔서."

"그럼, 좋지."

"근데 과장님, 임자가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뭐하러 직접 데리고 오셨어요?"

"내 눈에는 애다, 애."


차라리 서 너 살 먹은 애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당장 유아기로 퇴행해 버리고 싶었다.


군청 과장님으로 재직 중이셨던 친척분이 우리 집까지 나를 데리러 오셨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직접 합격 사실을 알려주시고 하루는 우리 부모님까지 대동하여 차를 마시고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첫 출근날에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라."

였다.

"내가 데리러 갈까?"

도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아직 임명장은 받지 않았지만 '상명하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예비 공무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심으로 부담스러웠다.

만약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서른 살씩이나 먹은 다 큰 성인이 직장에 처음으로 출근하는 역사적인 날에 누군가와 같이 가야 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자는 나의 부모님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직립 보행을 시작한 지 29년이 되어가는 중이었고, 두 다리는 멀쩡했으며 한글도 제법 잘 알아서 혼자 군내 버스 정도는 타고 직장에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친절은 지나쳤다, 고 나는 기억한다.

2009년 9월 1일이었다.

우리 집은 교통이 불편해서 집에서는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미리 면 소재지로 나가 자취방을 하나 급히 구했다. 6월과 7월 사이엔가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고, 임용될 때까지는 내 자유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발령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못 했었다. 달랑 자취방 하나 얻는 것 밖에는.


당신이 더 기분 좋아 보이신다.

내가 장원급제라도 한 것인가.

직접 군청까지 태워다 주시겠단다. 

그 부담스러움을 어쩌면 좋을꼬?


군청에 도착했다.

임명장을 받고 인사도 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누구에게 어떤 인사를 말씀하시는 거지?'

신규자는 일단 시키는 대로 무조건 다 한다.

나는 그랬다.

몰라서도 그랬고 그래야만 하는 줄 오해해서도 그랬다.

얼떨결에 모든 게 낯설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도 판단했다.


당시는 '행정지원과'라고 불렀었던가? 어쨌거나 인사 담당자에게 나를 데리고 가고 과장님께도 인사시키고 느닷없이 한참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이번에  합격한 내 조카라네. 인사들 해."

라며 얼마나 뿌듯해하시던지.

난 우리 아빠가 오신 줄 알았다.


정말이지 이런 분위기 적응 안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활달한 성격도 아니었고, 이제 막 수험생활의 동굴에서 빠져나와 공시생의 허물을 벗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아직은 인간 사회의 무리에 끼어들기엔 일렀다.

나에게로 향한 수 십 개의 호기심 어린(단지 호기심일 뿐이었다고 느꼈다.) 눈들이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그날의 풍경은 언제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게 한다.

나를 데리고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다 소개해 주셨다.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아실 턱이 없는 그분은 당신의 자식이었더라도 그렇게까지 적극적일 수는 없겠다 싶게 한껏 들떠 보이셨다.

확신하건대 귀 기울여 듣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새로 온 직원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인사 담당자가

"임자가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라고 면박을 주어도 그저 좋다 하시면서

"내 눈엔 애다."

라는 대답을 듣고 지었던 인사 담당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난날에 자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니까 보다 못해, 아니 차마 더는 못 봐주겠어서 면사무소 임시직 자리를 지원해 보라고 제안하셨었는데

'그때 만약 내가 뽑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했다.

이것저것 따질 때도 아닌데

'임시직은 안 하겠습니다. 시험 봐서 공채로 들어가겠습니다.'

당돌하게 거절했던 나의 최후는 이런 것이었다.


지나치시다, 지나쳐.

혼자 끙끙 앓으며 속으로만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학생이 되었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운동장이었더라면 일부러 쓰러져 버리기라도 했을 텐데, 에어컨 잘 돌아가는 그 사무실 안에서 나는 최대한 조신하게 그분이 이끄는 대로만 따를 밖에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분명히 그 자리에 인사 담당자가 있었다.

인사담당자보다도 그 친척분이 더 열과 성을 다해 내 소개를 하셨다.

그 순간만큼은 누가 인사담당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다른 직원들과의 형식적인 인사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사담당자의 얼굴이 밝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작이 이래서는 안 되었다.

이렇게나 요란하게 발령 첫날을 맞은 나는 그 과보를 13년 후 톡톡히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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