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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3. 2022

남의 편은 돈버는 아내를 원한다, 여전히.

'말테의 수기'에 버금가는 작품을 예고하며

22. 11. 22. 어떻게도 단속 안되는 남자,남의 편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로 열흘에서 보름 간격으로 말하네."

"뭐를?"

"나 일 그만둔 거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나 몇 번 얘기 안 했어."

"아니, 자주 얘기했어. 한 달에 몇 번씩은 꼬박꼬박."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평생 하겠지? 죽을 때까지?"


어제저녁을 먹다 말고 남의 편은 또 시작했다.

그 주기가 돌아온 것이다.

내가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거짓말한다고 할 판이다.

진지하게 , 나의 희망대로 언젠가 요긴하게 증거 자료로 쓰일 수 있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동시에 나는 은근슬쩍 그리고 엉겁결에 '남의 편 미련'에 대한 연재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자기가 있으니까 이렇게 오면 바로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고, 내 옷 세탁도 다 해 주고 좋네."

"그래. 밥 많아. 많이 먹어. 공부해야 하니까 든든히 먹어 둬."

여기까지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렇게 심심하게 끝나면 부부가 아니지.


"자기가 계속 일했으면......"

"나 근무 계속했으면 어림도 없지. 정신없고 바빠서 밥이나 제때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대충 냉동밥이나 데워서 먹었겠지. 그리고  전입시험은 꿈도 못 꿨을 거야."

"아니지. 더 잘 먹고살았겠지."


에구머니나,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호강에 겨웠다.'라고 한다지 아마?

아내가 직장생활을 안 해도 배달음식은 전혀 상종도 않고, 나들이 갈 땐 항상 도시락과 간식을 손수 준비해  가며, 두 차례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 갈 때도 밥 한 끼 안 사 먹고 삼시세끼 다 혼자서 준비해서 가족들 먹이고(여행중에  끼니를 다 만드는 일은 맞벌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도 거의 매끼 새 밥 짓고 새 반찬 만들어 밥상 차리는 경우가 아주 흔하지 않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었다.

나야 내가 감당할 만하고 원해서 한 일이지만, 남의 편은 그럴 때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라는 말로 입으로 공을 갚는다.

난 차라리 과묵한 남자가 좋다.


"지금 이렇게 잘 먹고살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자기도 일했으면 더 풍족하게 잘 먹고살았을 거라고."

"난 지금도 모자란 거 없지 잘 먹고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뭘 얼마나 더 바라?"

"아니지. 둘 다 일했으면 형편이 더 나았겠지."


"또 시작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말 할 거야?"

"왜 듣기 싫어?"

"아니, 관심 없어. 내가 듣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어디 한두 번 들은 소리여야 말이지. 어쩜 1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이라도 그 소리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냐."

마구니가 꼈구나...

나도 살아야겠다.


"내가 자기니까 안 말렸어.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말렸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기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이잖아. 본인이 결정하면 무조건 그렇게 해 버리는 사람."

누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세상에 무지막지하게 내 생각만 하고 내 마음대로만 사는 사람인 줄 오해하겠다.


정말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산다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도 않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무엇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아는 그 숙원사업,간절한 내 소망 하나가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실텐데?



남들이야 나에 대해 오해를 하건 말건 별로 신경 안 쓰이지만, 나보고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라는 그 말을 한 남의 편이야말로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생각하고 오해하고 헛다리 짚고 사는 사람 같다.


"이미 다 끝난 일 말하면 뭐하겠어."

내가 대꾸도 않자 혼자 넋두리다.

아닌 것 같은데?

말하면 뭐 할 것 같아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자꾸 얘기 꺼내는 것 같은데?

설마 알람 맞춰놓고 주기적으로 뒷북치고 있는 건 아니지?

진심으로 그 속을 모르겠지만, 굳이 또 알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자기가 집에 있으면서 나 전입시험 준비한다고 하니까 신경 써주고 그러니까 좋네."

저런 말을 불과 하루 전에 내게 했던 양반이시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도 이렇게까지 하룻밤 사이에 엇나가지는 않으리라.

도대체 무슨 불치병에 걸린 것일까.

완치가 가능하기나 할까.

약도 없어 보인다.


도대체 그 양반의 마음은 몇 움큼의 갈대로 이루어진 것이란 말인가.

별 뜻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의원면직 한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일 그만 안 뒀다면'하는 그 우려먹는 사골, 닳고 닳아 솥단지가 새카맣게 다 타들어가겠다.

먹을 사람도 없는 그 사골을 누구 좋자고, 누구를 위해서 주기적으로 성실히도 고아 내시는가.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따뜻하게 데워 그의 밥상에 얌전히 올려놔 주고 싶을 지경이다.

점심 때도 급식 말고 저거 잡수라고 팔팔 끓여 보온병에 고이 담아 주고 싶어 내 손이 근질근질하다.

저리도 정성껏 고아 내시는데 나도 얼마간의 성의는 보여줘야 하겠지.

내가 달리 남의 편이 나의 의원면직에 대해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아니다.

단순하게 정기적으로 툭툭 내뱉는 그 말에 혀가 내둘러질 뿐이다.

그래,

또 얼마 후 반복 재생될 것이야.


남의 편은 공부하겠다며 요즘은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간다.

당분간 시험 준비로 정신없을 줄 알았더니 시험이 그의 '미련'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사소한 것인가 보다.

앞으로 또 얼마 동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로 하여금 증거자료를 남기게 힘을 써 주실지 기대 만발이다.

충분히 기대해도 좋으리.

그는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으니까.


어제도 아내를 위해 급식 때 나온 사과주스를 챙겨 가지고 퇴근한 남자, 그러나 채 한 시간도 못되어 입으로 그 공을 다 까먹어 버리는 남자, 그 남자와 나는 부부다.


남의 편이 내게 규칙적이고도 성실히 다 끝난 일을 끄집어내는 일에 대해 기록하는 일, 이쯤 되면 숭고한 사명으로까지  느껴진다.

언젠간 그의 앞에 수치화된 통계자료로 들이밀어 주리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 양반의 '미련' 혹은 '원망' 포인트가 더 적립되어야만 하리니.


*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사례자의 제보를 적극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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