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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17. 2022

"뜨거운 출발을 알린 그 해 겨울"

#.1 2012. 12  나의 꿈은 축구선수

 

초등학교 6학년, 나는 남들보다 늦다면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다. 아빠는 평소에 남에게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고, 엄하면서도 다정한 성격을 가지 신 독특한 분이었다. 아빠는 축구를 늦게 시작한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고, 누구보다 강하게 크기를 바라셨다.


축구를 시작하고 첫 공식 경기를 뛴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훈련장에서는 곧잘 따라갔던 내가 평소와는 달리 90분 내내 우왕좌왕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경기장을 겉돌았다. 공이 오면 뺏기기 일쑤였고, 공격수로서 슈팅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경기장에서 나와야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마치 10년 축구를 했던 사람이 시합장에서 공 한번 못 잡아본 것 마냥 무척 혼이 났다.


아빠: 너 오늘 경기장 들어가서 뭐했니?

나: ·············


아빠: 너 오늘 차라리 안 뛰는 게 나았어. 괜히 뛰어가지고 피해 주고 공격수가 슈팅 하나 못 때리고. 맨날 수비 뒤에 있거나 옆에 붙어있으니까 공을 하나도 못 받는 거 아니야!  으휴

나: ·············


아빠는 경기 내내 참고 참았던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숨죽여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깊은 한숨 소리에 머리가 멍해지고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걸 조수석에서 듣고 있는 엄마 또한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내가 골을 넣고 좋은 경기력을 보인 날에 아버지는 한 없이 즐거워하셨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이러한 소동은 매주 반복되었다. 축구를 그만두었던 그날까지.


아빠는 연습경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경기에 따라와 내가 뛰는 모습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관찰했다. 우리 아빠는 축구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 선수 생활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빠가 내 플레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틀린 말은 없었다. 내 단점과 고쳐야 할 점, 그날 경기에서 부족했 던 부분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듣기로는 아빠는 내가 축구를 시작하고부터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과 같은 전문적인 교육은 아니었지만, 매일 저녁 유럽 축구를 보면서 내 포지션의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을 분석하셨다고 한다. 주말이 솔선수범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새벽 6시에 조깅을 뛰러 나가셨다. 내가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럼에도 난 아빠가 좀 더 부드럽게 얘기해주기를 바랐다. 조금이라도 경기력이 안 좋은 날에는 차에 타자마자 폭풍 지적이 시작됐다. 푹푹 찌는 여름날, 그래도 아들한테 "경기하느라 고생했다" 한 마디 정도는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제일 컸고, 그게 제일 서운했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숨통 막히게 조여 오는 무거운 공기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힘들고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너무 억울한 날에는 아빠에게 말도 걸지 않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빨리 이 순간이 끝났으면..." 나는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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