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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Oct 27. 2022

"진심을 전한 문자 한 통"

#.2 2015. 12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이브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 자체 연습경기 후 외출을 나간다는 소식에 친구들 모두 한껏 신이 나 있었다. 물론 나만 빼고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가 경기를 보러 왔다. 키 작고 다부진 몸매에 항상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오는 아빠가 몸을 풀고 있는 내 시선 안에 들어왔다. 경기 전 이미 

"오늘 아빠 경기 보러 갈 거야, 이따 보자"라는 말 한마디에


'오늘 잘할 수 있겠지...?'

'아빠가 얘기했던 것처럼 볼 세워두지 말고... 공격적으로...'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첫 터치에 실수를 해버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내심 볼이 나에게 안 오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경기장에서 잘할 리가 있나. 나에게 공만 오면 적당한 타이밍을 놓쳐 공격 찬스를 놓쳐버리곤 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또 혼이 날 생각에 무섭고 두려웠다. 다들 멀리서 경기를 보러 온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경기장을 떠났다.


아빠: 휴 (깊은 한숨) —— (아빠가 화났다.)

아빠: 이수돈.


 내 이름을 부르는 낮고 굵은 목소리에서 강렬함이 느껴졌다.


아빠: 이렇게 할 거면 가서 짐 싸라. 도대체 발전하는 모습이 없어. 맨날 똑같이 플레이하잖아! 아빠가 얘기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맨날 잔소리한다 그러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감독이 시합 때 너 뛰키겠어?

나:............


축구를 시작한 지 3년. 축구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볼을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뛰어야 될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 쉴 때 개인적으로 훈련을 나가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감독님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잘하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 서러움과 답답함에 눈물이 났다. 축구를 하기 전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처음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다. 혼이 나고 잔뜩 풀이 죽어있는 모습으로 친구들과 외출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그날 밤 아빠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핸드폰 타자를 잘 치치도 못하는 우리 아빠가 한 글자 한 글자 몇 분이나 걸려서 보냈을 문자를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군데군데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하나도 안되어 있는 저 투박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문자를 보면서 말이다.


  "아빠는 알고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다만 내가 더 발전하고 강해지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 진심을 알았기에 아빠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날 밤, 다시 마음을 잡고 최선을 다해 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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