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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하면 보성녹차 아니야?

내 마음의 고향, 하동

by 안온

"어디서 왔다고?"


"하동이요. 경남 하동. 그... 혹시 진주 아세요? 아니면 창원 아시나요? 거기서 한두 시간 가면 있어요."



" 아~ 안동? 안동 하회마을 알지!! 거기가 고향이란 말이야?"


"......"


휴. 오늘도 실패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숱한 질문을 받았다.


서툴게 서울말을 따라 하며 억양은 완전 경상도 토박이.


말 한마디 꺼내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먼저 받았다. 요즘은 하동이 많이 알려져서 그래도 조금은 낫지만, 10년 전 만해도 하동 하면 안동이라고 하고. 하동녹차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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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취직했다. 아침의 시작은 직원들이 모여 티타임 시간. 말이 티타임이지 사실 믹스커피 타임이다.


나는 믹스커피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5번도 안 되는 것 같다. 대신 우리 집 차를 마신다.


여름에는 2L 삼다수 물통에 생강홍차나 유자녹차 티백을 넣어 마셨고, 겨울에는 고뿔차를 보온병에 넣어 계속 우려 마셨다. 새로운 손님이 오면, 커피 대신 우리 아빠가 만드신 차라고 차를 타 드리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날 때마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분들에게 우리 집 녹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할 땐, 우엉차나 동결 건조한 귤이나 자몽차를 마셨고 임신을 했을 때는 루이보스차를 계속 마셨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쩌면 내가 차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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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차를 타서 주면,


"하동이 어디야? 녹차는... 그 보성녹차가 유명하지 않아? 보성 녹차밭도 엄청 예쁘고."


"아니에요. 보성도 유명하지만, 하동도 원래 차로 유명한 곳이에요. 마트에서 파는 티백 하고는 맛이 비교도 안되고요! 이거 한 번 마셔 보세요. 이번에 햇차라고 엄마가 보내주신 거거든요."



아주, 하동 녹차 지킴이 나셨다.


편의점에 가도 하동녹차와 보성녹차 음료가 있으면 난 항상 하동녹차 음료수를 산다.

'왕의 녹차, 하동녹차'


나는 보성 녹차에 대해 잘 모르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 '하동'이 내 고향이고 내가 자란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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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때쯤 '한국의 알프스, 하동.''하동 알프스'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 차를 타고 진주에서 하동으로 가는 하동군 전도면의 길거리에서 본 플래카드.


"(피식) 아빠 너무 웃기다. 하동 알프스라니! 말도 안 되는데. 하동이 무슨 알프스야.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웃고 가겠네."


그땐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던 시골 촌뜨기는 도시의 삶을 동경했다.


도시에서 살게 되니, 내가 살던 '하동 알프스'는 실제 알프스만큼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었다.

하동 사람을 만나면 너무 반갑고, 먼저 챙겨주고 싶다. 하동 옆에 진주 사람이라도 좋다. 왠지 모를 동질감.


언젠가 지하철에서 '만수가 만든 차' 종이가방을 들고 있던 여자분을 기억한다.


그때 얼마나 반갑고, 감사하고 아는 척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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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은 하동 화개에서 태어나서 참 감사하고 좋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고향 하동을 알아줬으면. 녹차 하면 하동!이라고 말해줬으면.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지리산 정기받아 자라온 우리. 돌을 갈고 산을 깎아 뭉쳐진 고장. 알알이 땀방울 맺혀있는 벚꽃에 한아름 쏟아지는 정열의 향기는......'

-화개 중학교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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