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너는?
대를 이어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만 녹차 일 하고 끝내야지."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었나보다.
녹차 일을 하고 꽤 세월이 흘러 우리 집에도 차 밭이 생겼다.
만수 차 밭이 생기고 나서 부터는, 아버지께서 이 일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지신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어른이 되고나서는 엄마가 이렇게 말하시곤 한다.
"재표한테 차밭 물려줘야지. 승희야 재표한테 다 줘도 되지?"
나는 하동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고등학교는 진주로 다녔다.
항상 친구들은 말했다.
부모님이 뭐하시는지 이야기를 하면
"그럼 너도 나중에 차 일 하는 거야?"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해서 회사동료들에게 말하면,
"힘든 회사를 왜 다녀. 지금부터라도 아버지 밑으로 들어가서 일해! 그게 훨씬 낫겠구만."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20대 초반에는 뭘 해야 할지, 뭘 해서 먹고살지 몰라서 막막했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서른이 된 지금도 이런 걱정은 늘 하고 있다.)
그 때 중국에 차를 배우러 갈까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 강남에 있는 파고다 어학원을 몇 달 다닌 적이 있다. 중국어는 다 까먹었지만...꽤 재밌었다. (코로나 이전 상황이라, 부모님께서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차문화대전에 매년 참가했었다. 그 때 가서 간간히 도와드리고 다른 나라 차도 마셔보고 좋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50대 이상이 대부분이였다면, 요즘은 2030세대들이 차를 많이 즐기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티스타그램, 티린이, 차린이'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차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압도적으로 젊은층이 많다. 그 사람들은 예쁘게 찻잔과 다기들을 플레이팅하고 자신들이 그 날 그 날 마신 차들을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승희야, 서울에서 티룸하는 사장이 우리집에 왔는데. 니랑 동갑이던데~ 니 엄청 부러워하드라고~ 딸인데~ 아빠가 녹차하는데 딸은 뭐하고 있냐고."
엄마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
차에 좀 관심을 가지라는 소리다. 차로 먹고 사는게 그리 쉬운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차철이 아닌 가을, 겨울에도 늘 차밭으로 출근하신다. 잡초를 일일히 다 뽑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 예초기로도 나무와 풀을 잘라줘야하고. 확실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한 해 두 해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가실 때 마다, 차철이 되면 더욱 힘들어지시겠지.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신다. 70살까지는 끄떡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