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해타산을 생각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차밭에 올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한 포기 한 포기 풀을 뽑으면서 직접 수확한 차, 내가 키운 차 아니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 차, 내 영혼이 담긴 차를 만들어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만수의 향기를 전하고 싶다.
- 하동 덖음차의 더 꿈 中
아빠의 운명은 녹차였을까.
요즘 읽고 있는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 이런 글을 봤다.
'빵집 아들의 운명은 도넛이다. 그렇기에 늘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
'도넛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검은건반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는 법이다.'
이 글에 기대어 나를 돌아보면,
찻집 딸의 운명은 차(茶)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은 차를 만들었고 밥을 먹듯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차를 마셨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기에. 불편한 것도 싫은 것도 없이 차는 우리 가족의 삶 자체가 되었다.
"너희 부모님은 뭐하셔?"
고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누구 부모님은 공무원이고, 누구는 선생님이고, 누구는 항공 쪽 회사 다니시고.....
"우리 부모님은 녹차 만들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친구들은 다들 신기해했는데, 어릴 적 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선생님이고 공무원이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시는 부모님들이 더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시대가 변한 걸까. 직업의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모님이 차를 만드셔서 너무 부럽다고 한다.
일명, 차(茶) 수저.
금수저, 흙수저도 아닌 차 수저라니!
피식 웃게 되면서도 왠지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꼭 대를 이어서 차를 만들어주세요. "
"이 아까운 차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딸인 내가 만수가 만든 차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종종 듣는 소리다.
막연한 미래이지만, 남동생이 차를 이어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차를 마실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온갖 걱정과 잡생각들이 없어진다.
글 쓰는 이 시간과 참으로 비슷하게, 오롯이 찻잔을 앞에 두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책을 보며 차를 마시고 내 이야기를 쓰는 이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
차를 마시면서 맛과 향을 느끼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많은 분들과 차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고 또 더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