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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가 만든차의 스쳐간 인연 - 성오 아빠

기철이 행님 일로 오씨요.

by 안온

만수가 만든차의 공장은 아담하고 소박하다.

공장 뒷 문을 열면 벽돌집 하나가 있는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 집은 성오와 성오 아빠, 성오 할머니가 살던 집이다.

들락날락. 그렇게 두 집 사이의 거리는 몇 걸음 되지 않아서 남동생과 성오는 친형제처럼 매일 놀곤 했다.



"기철이 행님 일로 오씨요. 담배 한 보루 사줄텐께 오늘 나랑 같이 일하씨요. 차밭에 할 일이 많아. 풀도 좀 같이 뽑고 나랑 같이 일 좀 하씨요 행님."


"허허허."


성오 아빠는 허허허가 대답이었다. 앞니가 듬성듬성 빠져버려서 웃으면 못난이 인형 같은 얼굴.

성오 아빠가 우리 집 일을 도왔던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성오 아빠가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성오 엄마가 있었다. 성오가 어릴 때는 두 분이 함께 녹차 일을 도왔다.


내가 한 10살쯤 되었을까.


"공장장님~ 녹차 빨리 비벼 주십쇼~"

"기계 돌아갑니다 공장장님! 트로트 음악 더 세게 틉니다~"


순진하고 순박한, 그렇지만 일거리는 없는 성오 아빠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매번 '공장장님~ 잘하고 있어요~ 공장장님! 더 빨리 서둘러 주십쇼!' 라며 '공장장님'이라는 호칭을 꼭 불러줬더랬다.


내가 어릴 적 녹차 철에는,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꼭 트로트를 틀곤 했다.

성오와 남동생 재표, 그리고 나는 녹차 비비기와 털기를 도와주면서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잠시 쉬는 시간에 야식으로 통닭을 먹었다.




"여보. 맛있는 김밥 쌌는디 기철이 행님 부를까? 같이 먹그로."


맛있는 음식을 하는 날이면, 언제나 성오 아빠와 성오를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아빠도 참 착하지. 가끔은 우리 가족끼리 먹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성오 아빠 혼자 밥도 잘 안 챙겨 먹는다고 매번 부르시곤 했다.


성오 아빠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묵묵히 아빠 일을 도왔다.

아빠도 그런 행님을 챙겼다. 차밭에 가서 같이 풀도 뽑고, 차도 같이 만들고, 그 밖의 소일거리도 함께 나눴다.




성오 아빠는 지금 안 계신다.

몇 달 전, 하늘길로 여행을 떠나셨다.

참 순박하고 좋은 사람. 허허허 실실 웃기만 했던 그런 분이었다.


만수가 만든차가 지금에 오기까지, 참 많은 분들이 스쳐 지나갔다.

성오 아빠의 한 일생도, 만수가 만든차에 담겨있다.


'만수'가 만든 차이지만, '만수'와 함께했던 '만수의 사람들'의 혼도 담겨있다.

성오 아빠의 짧다면 짧은 60년 인생 동안, 20년은 만수차와 함께 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아빠의 젊은 날, 우리는 그 작은 공장에서 늘 함께 였었고 함께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하늘에 계신 성오 아빠께 이 글을 전해 본다.

'김기철 공장장님.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공장장님이었던 그 시절 만수가 만든차를 늘 기억하고 마음속에 담아둘게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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