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살에 퇴사? 근거를 말해봐 -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고 싶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소설가. 하버트 조지 웰스>
가치관이
같은 사람
"근데, 난 결혼해도 아이는 안 낳으려고."
"진짜요...? 왜요?"
"이 일 하니까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냥 아이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어! 저도 그러고 싶어요!"
7년 전, 후배 여직원과 함께 외근 가며 나눈 이야기인데요. 그 후배가 지금은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결혼해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가치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치 않았어요. 그래서 저와 비슷한 가치관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많은 이유 중, 그 신기함도 크게 한몫했어요.
아시겠지만, 결혼해 맞벌이하며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을 딩크족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결혼한 지 3년 된 딩크족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없는 삶은, 늦은 나이에 퇴사를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왜
딩크족이
되었는가?
첫 번째.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동생과 저는 자주 다치기도, 아프기도 했는데요. 마치, 누가 엄마를 더 속상하게 하는지 내기하는 것처럼 둘이 돌아가며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오죽했으면 큰 종합병원에 딸려있는 놀이터에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등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도 기억나니 말이죠. 그리고 두 남매를 홀로 병원에 데리고 다니던 엄마의 지치고 슬픈 표정도 기억납니다.
'하드코어 난이도'로 키운 남매는 학교에 들어가니 공부엔 관심 없었고, 사춘기가 오니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사고 치기 바빴습니다. 엄마는 두 자녀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종교의 힘 밖에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드리러 교회에 가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지하 단칸방에서 오래 살았던 기억도 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 다행인 건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여러 감정의 교류를 전업주부인 엄마와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부모의 헌신과 사랑을 자연스레 배웠던 것 같아요.
여러 발달이론에서 초기 아동의 경험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특히, 부모와 애착관계 그리고 건강한 정서적 교류가 중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맞벌이로 아이와 오랜 시간 보낼 수 없는 현실'
'애초에 출발선이 달라,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월급으로 내 집마련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
'매번 아이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강력범죄'
'어린 나이부터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입시위주 교육' 등등...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건강히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면 좋겠지만, 누구와 비교하는 게 일상이 된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잘 키운 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오랫동안 상담하며 이론적으론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을 알았지만, 오히려 양육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버린 것 같아요.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딩크족이 되어 살기로 결정했어요.
두 번째,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보다 4배 정도 빠르게 흐른다고 합니다. 즉, 우리 기준으로 한 시간이 그들에게는 4시간이네요. 사랑스러운 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온 날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으로 하루에 9시간이나 집을 비우는데 '좀 더 신중히 입양을 결정할 걸'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퇴근 전후로 30분씩 4번 산책을 나갔고, 주말마다 넓은 공원에서 마음껏 뛰어놀도록 함께 외출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는 피곤한 강아지라는데요. 주말에 대자로 뻗어 세상 편히 자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 하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일이 사람처럼 힘들었다면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어느 날, 평소 좋아하던 게임을 새벽 늦게까지 하고 있었는데요. 얼마 전, 아빠가 된 친구가 게임에 들어왔습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고 물었는데요. 글쎄, 아이를 겨우 재우고 방에서 몰래 나와 게임 한판 하러 왔답니다. 개인적인 시간이 매우 중요한 전, 그런 친구를 보며 다시 한번 딩크족으로서 영원하리라 다짐했어요.
많은 부모님을 만나며 느낀 게 있어요. 그건 바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은 잠시 일시정지되고
무한한 헌신과 희생이 따랐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인생을 아이에게 헌신하고 희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해보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꿈... 이 모든 게 아이를 낳으면 할 수 없을 거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 걱정의 끝에 딩크족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씩
흔들린다.
첫 번째, 딸이라면 꼭 낳고 싶습니다.
저희도 마음으로 낳은 3살 된 강아지가 있습니다. 딸이에요. 항상 잘 때 자기 엉덩이를 제 등에 붙이고 자는데. 너무 사랑스러워서 "얘가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 미스터리하게 제 친구들은 대부분 딸을 낳았는데요.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고 예쁩니다. 그러다 보면 '딸이라면 낳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신기한 게 아내도 딸이라면 낳고 싶다는 겁니다. 서로 '얼굴은 날 닮아야 한다.' , '남자친구 데려오면 어쩌냐' 하며 행복한 상상을 했는데요. 그러다 서로 배신자라며 투닥거리다 다시 한번 도원결의를 맺었습니다. 비밀이지만, 아직도 딸이라면 낳고 싶어요.
두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쁨이야" (생각보다 빠르게 탈모가 진행되는 친구. 1)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씩 있는 힘든 일? 정말, 별개 아니라고 느껴져" (아이 낳고 사람 된 친구. 2)
"아이를 낳아야 진짜 인생이 완성된 기분이랄까?" (아이가 생겼다며 우울해하던 친구. 3)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힘들지만 행복하다'입니다. 반려견을 키워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이 아이가 주는 행복도 정말 크기 때문이죠.
딩크의 삶을 결정했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없는 삶을 후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기 위해
며칠 전, 절친이 득남했어요. 그렇게나 아들을 낳고 싶어 했는데 잘 됐습니다. 사진을 보니 친구 녀석과 판박이이네요.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아빠를 '똑' 닮은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느껴져요. 실제로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저보다 몇 배는 기쁨과 감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이가 있는 삶은 인간이 느끼는 행복, 그 정점에 있을 거예요.
딩크의 삶을 선택한 제가 당장은 몸과 마음이 편할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마음으로 낳은 반려견은 제 삶에 많은 행복을 주겠죠. 하지만, 아이라는 존재가 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평생 느낄 수 없을 거란 아쉬움은 있습니다.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지금, 안정적인 삶만 추구하는 건 훗날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없어 자유로운 만큼,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꿈을 이뤄가는 게 제 삶에 정답이라 생각했어요.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아이가 없어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 퇴사가 그 시작이라 믿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행복을 얻고 있나요?